기억은 선명히 남습니다. 2024년 12월3일 밤. 국회에 헬기가 수십차례나 굉음을 일으키면서 착륙했습니다. 헬기에서 내린 무장한 공수부대원은 적진을 타격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국회 본관 유리창은 무자비하게 깨지고, 총을 든 군인들은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휘젓고 다녔습니다.
천운이라고 할까요.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 계엄해제가 결의되고,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6시간 만에 무력화됐습니다. 사실상 내란을 주도한 대통령은 당연히 탄핵 수순에 들어갑니다. 헌법을 파괴하고, 국가 위기를 주도한 ‘내란 수괴’는 단죄를 받아 마땅한 겁니다.
그런데 2분도 채 걸리지 않은 담화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회에 제출된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지도 않았습니다. 윤석열의 사탕발림에 ‘무장해제’된 겁니다.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둘러싸며 ‘내란 수괴의 단죄’를 바라는 시민뿐 아니라 국민들의 민의를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상식없는 사람에게 상식을 바라지는 못해
상식이 없는 사람에게 상식을 바란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국민의힘이 보여준 국회에서 행동으로 ‘대통령 윤석열’은 아직 유효합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의 ‘2선 후퇴’를 추진하며 권력을 위임받은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권력의 속성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반추해 봐도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한 대표가 그토록 떠받드는 헌법에 따르면 ‘윤석열의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은 살아있습니다.
숨 쉴 틈이 조금이라도 보인다고 하면, 언제든지 ‘헌법에 따라’를 외치면서 계엄령에 준하는 폭력정치를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는 겁니다.
오히려 지금 더 독이 오른 ‘살아남은 대통령’은 어떤 행동을 벌일지 모르게 됐습니다. 검찰이 재빠르게 ‘내란 음모’를 수사한다고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잡아들이고, 관련자를 수사한다고 하지만, 탄핵에서 살아남은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법적으로’ 영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권력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치가 누구보다 빠른 검찰이 분위기가 희한하게 돌아간다고 느끼는 순간 윤석열 부부 면죄부를 위한 칼끝이 국민들에게 향할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중인 12월7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이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사진=뉴시스)
'전두광'의 광기어린 웃음
1979년 12월12일. 쿠데타군의 수괴 전두환은 반란 진압을 위한 육군본부의 9공수여단 출동으로 수세에 몰립니다.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커진 시기, 전두환은 육군본부에 ‘신사협정’을 제의합니다. 9공수여단을 회군시키면, 자신들이 불법 동원한 1·3 공수여단을 되돌리겠다는 겁니다. 순진한 육군본부 수뇌부는 9공수를 회군시켰지만, 전두환은 약속을 깨고 그대로 밀어붙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제압하고 쿠데타를 성공시킵니다. 이후 흐름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폭압과 아픔으로 점철된 민주주의의 후퇴입니다.
12·12 군사반란을 영화로 만든 ‘서울의봄’ 마지막에는 쿠데타 수장 ‘전두광’이 화장실 세면대에서 광기 어린 웃음을 한참 동안 터뜨립니다. 2024년 12월7일 밤. 미끼를 덮석 문 한동훈의 국민의힘에 힘입어 탄핵을 모면한 ‘윤석열’은 한남동 공관 세면대에서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승주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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