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전 세계 인공지능(AI)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괴물칩이라 불리는 AI 가속기가 탑재된 ‘DGX B200’을 세계 최초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통신사업 계열사 소프트뱅크에 공급합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가전·반도체 시장점유율 1위였다 한국과 중국에 뒤처진 일본이 AI 시대를 맞아 엔비디아와 전략적 협업을 맺고 산업강국 재건에 시동을 거는 모습입니다. AI G3(글로벌 3위) 목표를 세운 한국 입장에선 일본과 엔비디아의 동맹 관계를 특히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엔비디아 AI 서밋 2024’를 개최하고, 이 자리에서 DGX B200을 소프트뱅크에 공급한다고 밝혔습니다. DGX B200은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칩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탑재된 AI 통합 플랫폼입니다. 소프트뱅크는 DGX B200을 도입해 AI슈퍼컴퓨터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DGX B200은 이전 세대 대비 AI 추론 성능이 15배 향상돼, 일반인공지능(AGI) 도래를 앞당기는 괴물칩으로 불립니다.
서밋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클라우드 제공업체들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일본의 자동차, 로보틱스, 통신, 의료 산업을 AI 시대 맞게 재편하는 데 필수적인 AI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일본 클라우드 기업 하이레소가 내년 여름에 가동하는 AI 데이터센터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1600개가 공급됩니다. 우리나라 기업·연구소 등이 보유한 3000여개의 절반이 한 기업에 공급되는 셈입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칩 확보가 그 나라의 AI 기술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됐다”면서 “차세대 칩을 확보한 일본이 AI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면 AI 고도화도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I 기술력에서 지금은 일본이 한국보다 뒤처진 상황이지만 AI 인프라 구축 상황에 따라 순위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글로벌 AI 지수에서 13위에 머물렀던 프랑스는 올해는 한국을 제치고 5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기업 미스트랄이 설립 1년 만에 기업가치 58억유로(약 8조6000억원)의 평가를 받는 등 빠르게 AI 기술력을 확대해 나간 영향입니다.
일본 정부의 지원도 만만찮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소프트뱅크그룹의 생성형 AI 개발에 필요한 슈퍼컴퓨터 구입 등에 보조금 53억엔(약 480억원)을 지원한 바 있습니다.
올해 글로벌 AI 지수에서 AI 경쟁력은 한국이 세계 7위, 일본이 16위입니다. 순위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일각에선 이번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의 전략적 협력이 한국의 AI G3 도약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의 회장은 앞으로 10년 이상은 AI가 세계 경제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고 엔비디아와 전략적 협력을 맺는 것”이라면서 “이는 우리에게도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교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중요 파트너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을 제치고 일본과 협업했다는 것에 대해 정부는 큰 위기감으로 감지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13일 일본 도쿄 더 프린스 파크 타워에서 열린 '엔비디아 AI 서밋 재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AI 혁명에서 일본 역할에 대해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엔비디아)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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