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신태현 기자]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은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입니다. 주거권도 기본적 인권이라는 인식 아래 주거권 보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주거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있는데, 정부는 주거권 보장 대신 토지개발에 정책 초점을 맞췄습니다. 부동산 가격 억제보다 부자감세로 투기를 방치하는 중입니다. 지난 6월부터 쪽방촌 문제를 연속해 보도한 <뉴스토마토>는 청년층과 탈시설 장애인 등 주거빈곤층의 주거권 실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1. 30대 직장인 A씨는 2022년 인천에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부동산을 통해 보증금 9000만원을 주고 집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입주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세사기였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회사까지 퇴사한 A씨는 현재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2. 부산에서 교사로 일하는 B씨는 자취를 합니다. 교사라는 일의 특성상 어디로 발령이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월세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월세는 43만원입니다. 관리비까지 합치면 평균 60만원 내외를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높은 금리의 전세보증금 이자도 지출하고 있습니다. B씨 월급의 25%에 해당합니다.
주거권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2022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부동산 도시를 넘어 세입자 도시로’ 지방선거주거권네트워크 출범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취업난과 고물가, 부동산값 상승으로 청년층이 주거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청년층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터라 부동산 거래 경험이 부족합니다. 전세사기나 깡통전세 피해에도 취약한 겁니다. 전세를 피해 월세를 택하더라도 급여 대비 주거비 지출이 높습니다. 주거빈곤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습니다.
김진호 민주노총 청년담당은 “임대차 계약이 거래 당사자끼리의 사적인 문제로 취급되면서 세입자와 청년들이 주거빈곤에 내몰린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거래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거문제는 저출생 등 사회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에 청년 주거권 안정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법)이 시행된 지난해 6월 이후 전세사기 피해자 중 2030세대는 74%에 달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으로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는 총 2만2503명입니다. 연령별로는 30대(48.2%)로 가장 많고, 20대(25.7%), 40대(14.6%)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어 △50대 7.0% △60대 3.2% △70대 1.1% △20세 미만 0.01% 순입니다.
청년 주거빈곤율 지속적으로 증가
2030세대 중에서도 주거빈곤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은 청년 1인 가구입니다. 전국적으로 주거빈곤율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2000년 이후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2020년에 발표한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및 주거빈곤 가구 실태 분석’ 보고서를 보면, 전체 청년 가구(256만가구) 중 11.3%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했습니다. 최저주거기준은 2011년 제정된 것으로,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주거기준입니다. 1인 가구의 경우 14㎡(약 4평) 이상 주거면적과 수도시설, 적절한 방음과 환기·채광 등을 요건으로 합니다. 전체 가구(1905만가구)의 최저주거기준 미달률이 8.2%인 걸 고려하면, 청년 가구의 미달 수준은 전체 평균을 큰 폭으로 웃도는 겁니다.
실태 분석 보고서는 이에 대해 “주거환경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아파트의 대량 공급으로 주거빈곤율이 급격하게 감소해 온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향과 달리, 청년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다른 세대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역주행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서울 지역 청년 가구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은 17.4%로 전국 평균보다 더욱 높다”며 “수도권에 양질의 일자리가 몰려 있지만, 수도권의 주거비 부담에 높은 생활물가까지 겹쳐 청년들의 주거빈곤은 날로 심각해지는 실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은 어느 정도일까요.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지난 5월 자사 앱 이용자 1547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 주거실태’에 따르면, 2030세대 월 지출 항목에서 주거비는 40.2%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식료품 구입(19.4%) △쇼핑 및 외식비(13.2%) △연금·보험·저축(6.6%) △교통·통신비(4.8%) 순이었습니다.
주거비 체감도를 묻자 △보통(34.9%) △높다(34%) △매우 높다(16.9%)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입주형태별 주거비 체감도의 경우 전세 거주자는 '보통'(41.3%), 월세 거주자는 '높다'(41.9%)고 답한 비율이 높았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9월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전세사기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청년층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면서 ‘청년전세임대주택’과 ‘행복주택’ 같은 공공임대주택, 공공기숙사 등의 여러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택공급 자체가 부족하고 정책의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평가입니다. 청년층 안에서도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에 세밀한 정책수요 분석 없이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일괄적 정책을 추진하는 건 부작용만 낳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청년층이 실질적 지원을 받고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분화되고 두터운 주거정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박효주 참여연대 주거조세팀장은 “우리나라 주거환경에서 청년층 같은 주거빈곤층은 자력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과거 정부에서는 ‘주거 로드맵’을 통해 미흡하나마 주거권 보장 정책들이 추진됐는데, 지금은 빈곤층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양확대 등의 시장 친화적 정책들만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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