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석유화학 구조조정 방안 일환으로 업계가 미국산 에탄을 수입하는 자구책을 강구 중입니다. 대산산단에 모여 있는 LG화학, 롯데케미칼, HD현대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4사가 공동구매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4사는 관련 방안을 확정하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NCC 구조조정 해법은 에탄 수입
3일 업계에 따르면 4사는 석유화학협회 주관 아래 TF(특별팀)를 구성하고 여러 산업경쟁력 복원 방안 중 에탄 수입을 검토 중입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원료 수급 다변화 차원에서 4사가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공동구매를 해야 원가절감도 되고 시너지가 생기니 합의를 모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에탄크래커 용도가 될 것 같은데 구체적인 시기나 방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법적으로 현재도 에탄 수입은 가능하나 저장시설 등 인프라 측면에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해 구체적 방안이 확정되면 건의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에탄은 미국의 매장량이 풍부한 셰일가스에서 추출합니다. 최근 에탄 가격이 저렴해져 미국 에탄크래커(ECC)의 수익성이 회복됐습니다. 국내엔 에탄크래커가 없지만 기존 NCC의 설비변경 등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앞서 LG화학 등은 납사크래커(NCC) 매각을 추진했지만 업황이 부진해 매수인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ECC로 변경하면 매각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NCC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저조한 수익성 문제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값싼 에탄을 수입해 가공하면 국내 석유화학 올레핀 시설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대산단지에는 한화토탈에너지스가 가장 많은 연산 1525만톤의 NCC를 보유 중입니다. 이어 LG화학 1300만톤, 롯데케미칼 1100만톤, HD현대케미칼 850만톤 시설을 갖고 있습니다.
관련 방안엔 HD현대케미칼이 좀 더 적극성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산단지엔 HD현대오일뱅크와 HD현대코스모, HD현대OCI 등 다수 계열사가 포진해 시너지가 가능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다수 합작사업으로 성공했던 노하우도 축적하고 있습니다. HD현대그룹 내 에탄 전용 운반선 건조 능력도 있어, 관련 사업 연결도 가능해 보입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미국 현지에 이미 대규모 에탄크래커 설비 투자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대산 시설을 변경하면 ECC가 중복되지만 국내 NCC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선 동조할 듯 보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원자재 안보 차원에서 미국은 다시 셰일자원 시추를 장려하게 됐으며, 일자리 차원에서도 증산 기조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대선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셰일자원 증산을 장려하며 지지세력에 어필하는 중입니다.
중국 내 NCC 대규모 증설 이후 올해는 다소 증설 규모가 줄었으나 자급력 수준은 이미 100%를 초과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때문에 중국 내 생산된 올레핀 제품이 해외로 쏟아져 나올 형국입니다. 중국에 수출하던 국내 올레핀 제품은 해외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저렴한 에탄 원료를 수입하면 수출 가격경쟁력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산업의 쌀’인 올레핀 사업 영속성을 유지하면 산업 안보를 지키는 측면에서 긍정적입니다.
중국발 프로필렌 공급과잉 심각
정부와 석유화학 업계가 10년만에 논의하게 된 구조조정 방안은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빠른 구조조정은 합종연횡식 인수합병(M&A)이나 업체간 환경이 달라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 가운데 프로필렌 설비의 중국발 공급과잉이 가장 어려운 과제로 지목됩니다.
효성화학과 SK어드밴스드의 프로판탈수소화설비(PDH)는 조단위가 드는 NCC에 비해 설비투자금이 수천억 단위라 중국서 증설이 폭주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프로필렌은 근래 일부 설비 트러블로 공급과잉이 완화되기도 했으나, 재가동 이후 다시 공급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에틸렌 스프레드(납사 대비 가격차)는 7월 톤당 105달러입니다. 전달 107달러, 전전달 110달러에서 하향세입니다. 연초 200달러에서는 하락폭이 가파릅니다. 300~400달러에 달했던 2022년까지 호황기와는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원유를 분해하는 NCC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모두 생산하지만 프로판 가스를 쓰는 PDH는 오로지 프로필렌만 만듭니다. 셰일가스를 분해하는 ECC가 늘어나며 프로필렌 제조량이 부족해지자 PDH도 한때 유망했습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탓에 중국 증설투자가 난무합니다.
납사 대비 프로필렌 스프레드는 7월 128달러로 연중 89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하는 등 시황이 부진합니다. 지난해 초 200달러대에서 떨어진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로판 대비 스프레드도 7월 193달러로 연중 200달러선을 간신히 넘기도 했으나 200달러 중반도 찍었던 지난해 대비 대체로 부진합니다. 프로필렌을 가공하는 폴리프로필렌 전방 제품도 중국에서 증설 이슈가 있습니다. 폴리프로필렌 스프레드(프로필렌 대비)도 지난 3월 346달러에서 7월 271달러까지 감소했습니다.
지난 5월 기준 중국의 PDH 생산능력은 2000만톤에 달합니다. 여기에 연중 230만톤 정도가 추가될 예정입니다. 국내 PDH 생산능력은 SK가 600만톤, 효성화학이 500만톤입니다. 지난해 국내 생산된 프로필렌 출하량은 모두 854만톤으로 NCC까지 고려하면 가동률이 극히 저조합니다. 그나마도 전년 911만톤보다 줄어든 추세입니다.
SK와 효성은 전방 폴리프로필렌까지 투자해 수직계열화함으로써 PDH 단일 생산 리스크를 줄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폴리프로필렌까지 증설하고 나서 역내 경기부진으로 구매수요까지 감소하자 공급과잉이 짙어졌습니다.
분기 연속 적자가 장기화되고 있는 여천NCC도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 공동 투자기업인 여천NCC는 연말 이들과 공급계약이 종료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조인트벤처 계약은 연장되나 공급계약 연장여부가 불투명하다”며 “지분 매각이 필요할 수 있으나 구매자가 없는 실정"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어 "NCC 역시 공급이 많은 프로필렌 중심으로 스프레드 개선이 지연되고 있다"며 "중국에서 최근 증설된 설비는 값싼 이란이나 러시아산 원유를 사용해 원가경쟁력이 좋다. 중국산과 수출시장에서 경쟁하게 된 국산 제품이 열위인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