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현대차그룹이 18일 2025년 연말 임원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이번 인사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연구개발(R&D) 및 핵심기술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으며, 특히 외부 인재 영입과 세대교체를 통한 ‘순혈주의’ 타파가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미래차 기술을 담당하는 첨단차 플랫폼(AVP) 본부와 전통 차량 개발을 맡는 R&D 본부의 수장을 동시에 교체하는 이례적 결단을 통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근본적 전환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현대차 만프레드 하러 R&D 사장. (사진=현대차)
현대차그룹은 이날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하반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현대차는 최고경영자(CEO), 디자인에 이어 R&D 조직에도 외국인 수장을 선임하며 성과주의 및 외부 인사 등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 정기 임원 인사는 총 219명 규모로 진행됐습니다. 사장 4명,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 신규 선임 176명이 승진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승진자 239명보다 20명 줄어든 규모입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미래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 슬림화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만프레드 하러 부사장의 현대차·기아 R&D본부장 사장 승진입니다. 하러 신임 사장은 지난해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외부 영입 인재로, 애플과 포르쉐에서 경력을 쌓은 글로벌 기술 전문가입니다. 1972년생인 그는 영국 바스대학교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애플에서 풀 비클 인테그레이션 헤드를, 포르쉐에서 카이엔 제품라인 부사장과 샤시 및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개발 담당 부사장을 역임했습니다.
하러 사장은 현대차그룹 합류 후 R&D본부 차량개발담당 부사장으로 제품 개발 전반을 총괄하며 차량의 기본성능 향상을 주도해왔습니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기아만의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HW→SW 전환 강력 의지
하러 사장의 기용으로 현대차는 연구개발(R&D) 부문 최고 책임자였던 양희원 R&D 본부장과 송창현 AVP 본부장 2명이 전격 교체되는 변화를 맞았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 조직은 미래차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AVP 본부와 전통적인 차량 개발을 맡는 R&D 본부 두 축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두 조직의 수장이 동시에 물러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번 인사는 현대차그룹이 기존 하드웨어 중심의 개발 방식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미래차 개발로 근본적인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됩니다. 단순한 인력 교체가 아니라 조직의 DNA 자체를 글로벌 기준으로 재편하겠다는 정의선 회장의 결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 현대차그룹은 아직 선두 업체들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지난 5일 열린 기아 80주년 기념식에서 이를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정 회장은 “중국 업체와 테슬라가 잘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 격차는 있다”고 말하며 기술 혁신의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만프레드 하러 부사장을 차기 R&D 수장으로 선택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입니다. 하러 부사장은 아우디, BMW, 포르쉐 등 독일 완성차업체에서 약 25년간 샤시, 전장,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한 기술 전문가입니다. 특히 애플에서 자율주행 프로젝트인 ‘애플카’를 주도했던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소프트웨어 중심의 미래차 개발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송 전 사장의 후임 선임 여부와 관계 없이 AVP 본부가 구축해온 기술 개발 전략을 지속 추진할 방침입니다. 송 전 사장이 주도했던 SDV 개발전략 수립과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 자율주행 기술 ‘아트리아(Atria) 인공지능(AI)’ 등의 기술 내재화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들 SDV 핵심 기술의 양산 전개를 위한 차세대 개발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최근 AVP본부와 포티투닷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은 그룹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목표”라며 조직의 결속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외부의 근거 없는 소문이나 억측에 흔들리지 말라”며 “개발 조직 간 협업을 넘어 그룹 차원의 역량을 결집한 진정한 원팀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송 전 사장의 후임 선임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조직 내부의 갈등 해소와 통합을 이끌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합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송 사장 후임을 선임하지 못한 이유는 후임자를 못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회사의 자율주행차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회사 내부의 갈등을 통합할 적임자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현대차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후임을 선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외부 인사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것은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업문화를 다양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호세 무뇨스를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했으며, 올해 초에는 정통 외교 관료인 성 김 전 주한 미국 대사를 전략기획담당 사장으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성과 중심 인사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기아 북미권역본부장 윤승규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대표적입니다. 1966년생인 윤 사장은 서강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경영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주실장과 미국·캐나다 판매법인장을 거쳤습니다. 그는 어려운 경쟁 환경 속에서도 전년 대비 8%가 넘는 소매판매 신장을 이뤄내며 기아의 글로벌 입지를 강화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외부 인재 영입도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HMG경영연구원장에는 신용석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가 부사장으로 영입됐습니다. 1975년생인 신 부사장은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글로벌 학계에서 거시경제 및 경제성장 분야의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손꼽힙니다. 그는 현대차그룹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며 전략적 인사이트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현대차그룹은 R&D, 소프트웨어, 스마트팩토리 등 미래 핵심 분야에서 우수 인재를 영입해 글로벌 시장의 기술 경쟁력을 선도해 나갈 방침입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임원 인사를 통해 글로벌 불확실성의 위기를 체질 개선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인적 쇄신과 리더십 체질 변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며 “SDV 경쟁에서의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적인 인사와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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