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인력 빼가기'를 시도 중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화오션은 2년 전 HD현대 조선4사(HD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HD현대미포·HD현대삼호)를 '부당 인력 유인·채용'이란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제소하고, 정치권의 중재로 지난해 부당 인력 영입을 막자는 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기는 행위가 밝혀지면서, 글로벌 조선산업 경쟁력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11일 <뉴스토마토> 취재 및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한화오션이 최근 HD현대중공업 핵심 인력들에게 전화나 문자 등을 통해 이직 제안을 하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 내 핵심 재직자들에게 접촉해 높은 연봉이나 일회성 인센티브 등을 제시하면서 이직을 유도했다는 내용입니다.
HD현대중공업 재직자 A씨는 "회사 직원들에게 공공연하게 전방위적, 노골적으로 연락이 오고 있다"며 "직원들은 수백만원 정도, 임원들은 수천만원 수준의 인센티브 줄테니까 오라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화오션은 인재개발팀, 인사팀 등의 인사 관련팀이 조직적으로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직원들은 HD현대측 내 경영기획, 설계 엔지니어 등 핵심 재직자의 연락처를 알아낸 뒤 연락했습니다. 내용은 '스카우트(Scout)'를 받은 임직원별로 다르지만, 새로운 '미래', '기회', '도전' 등의 단어를 주로 사용하며 영입 목적이 담긴 메시지입니다.
HD현대측은 한화오션의 스카우트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내 영업, 설계, 경영기획, 재무 등 핵심부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이직 제안이 오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두 달여 전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직 제의를 받은 사람들은 한화오션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화오션이 현대중공업 재직자들에게 메신저와 전화를 통해 스카우트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메신저 재구성).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앞서 한화오션은 지난 2022년 8월 삼성중공업과 대한조선, 케이조선 등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과 함께 HD현대측이 자사의 핵심 인력 다수를 부당하게 빼앗아 갔다며 공정위에 제소한 바 있습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 45조 1항 8호를 보면 '부당하게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경쟁사의 인력을 부당하게 유인, 채용해 원활한 사업이 진행되지 않게 한다면 공정위에 법리적인 판단을 구할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업계 내 인력 문제로 갈등이 커지자 국회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작년 9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HD현대측을 제소한 조선사들을 불러모아 '조선산업 발전을 위한 주요 현안 간담회'를 열고 '조선업 인력수급 및 고용질서 확립을 위한 상생협력 협약'을 맺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 조선 5개사 대표는 상생협력 협약서에 직접 서명을 하면서 화해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이 협약을 발판으로 HD현대측을 공정위에 신고했던 3개 조선업체(삼성중공업·대한조선·케이조선)는 제소를 취하했습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당시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며 공정위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취하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제소 심사결과, 심의 절차 종료를 HD현대측에 통지했습니다.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낸 겁니다.
약 1년 7개월 간 조선업계의 인력 유출 갈등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으나 얼마 못 가 인력 문제에 잡음이 재차 생기고 있는 겁니다. 특히 당시 입장을 고수했던 한화오션의 태도가 꺼져가는 불씨에 부채질을 했다는 관측입니다. 다만, HD현대에 문의한 결과, 한화오션 이직 제안에 응해 이직까지 이어진 사례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핵심 인력 빼가기 사건이 재발해선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심의 절차 종료는 조선업계가 각자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배려를 해서 상생해 나가라는 권고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경쟁사의 인력 빼가기로 그토록 문제제기를 심하게 했던 기업이 역으로 그런 행태를 일삼으면, 조선산업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업계에서 인사 업무를 십여년 넘게 수행해오고 있는 B씨는 "금전을 미끼로 동종사 직원들을 회유하는 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조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작년에 다 같이 모여서 상생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작년 조선산업 발전을 위해 경쟁 과열 완화에 힘썼던 김성원 의원도 "우선 인력 빼가기 문제는 우리 제조산업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조선업이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 작년 갈등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요 업체들을 불러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것"이라며 "22대 국회에서도 제조업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할 생각이지만, 조선업계도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상생협약서의 정신, 협약내용을 준수하며 함께 따라와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화오션은 경쟁사 이직 회유 작업에 대해 "최근 수년간 지속된 인력유출로 시황회복 시점에 맞춰 주요직무 대상 우수인재 채용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당사는 내외부 전문가를 통한 우수인재 추천 등 인재확보 절차를 상시로 운영 중"이라고 했습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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