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 잠수함 애호가들이 5월26일부터 30일까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세계잠수함대회를 열었다. (사진=최일 예비역 해군 대령 제공)
사람들은 취미를 중심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모임을 만들어 교류하길 즐기죠. 동물을 사랑하거나 산림을 애호하거나 우리 영토인 독도 수호 운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잠수함을 사랑해 취미로 삼기에 관해 들어보셨나요?
지난 5월26일부터 30일까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세계 잠수함 애호가 100여명이 59차 세계잠수함대회를 열었습니다. 세계 30여 나라 애호가들이 잠수함대회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대회 참가자들은 전몰장병 추도 행사를 진행했으며, 현대 잠수함을 처음 설계한 아일랜드 선박 설계가 존 홀랜드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각국 대표자 회의를 열어 내년에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대회를 열기로 정했습니다. 선물 교환과 갈라 파티 등 교류 행사도 했죠.
대회 참가자는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쪽이 많은데요. 이들은 평소 각 나라에서 잠수함 관계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 활동을 합니다. 나라별로 잠수함협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잠수함 애호 운동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과 프랑스 퇴역 잠수함 승조원들이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화해하자"며 평화운동 차원으로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 때 독일은 잠수함(유보트) 1170여척을 전쟁에 투입했습니다. 승조원 4만여명 가운데 3만여명이 숨졌죠. 잠수함은 해저로 가라앉습니다. 전사자 유해를 찾기 어렵죠.
종전 뒤 퇴역 승조원들은 어느 해역에서 잠수함을 인양했다고 하면 모아놓은 자료를 교환하며 희생자 신원을 밝히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나라를 가리지 않고 협력했죠. 과거에 적으로 싸웠던 사람들이 화해하고, "비극적인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자"고 다짐했습니다.
2013년 말레이시아 해역에서 고철 상인이 2차 대전 때 침몰한 네덜란드 잠수함 O-16을 인양했습니다. 잠수함에 고품질 금속이 많이 있고 일부 물품은 골동품으로 팔 수 있음을 알고 한 일인데요. 침몰 잠수함 처리에 관한 법규는 없었죠. 고철 상인들은 아무런 예를 갖추지 않고 승조원 유해를 훼손했습니다.
네덜란드 유가족들은 충격받았습니다. 태평양전쟁 때 네덜란드는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기지에 잠수함 열다섯 척을 두었습니다. 네덜란드 잠수함은 영국 해군과 협력하며 일본군과 싸웠죠. 당시 침몰한 네덜란드 잠수함 K-17 승조원의 딸인 브롬이라는 여성이 있었는데요. 전쟁 때 어머니 뱃속에 있던 브롬은 성장해 아버지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탔던 잠수함이 일본군 잠수함에 당해 침몰했고, 일본군 잠수함은 영국 잠수함 어뢰에 맞아 침몰했음을 확인했습니다.
2006년 브롬 여사와 해당 일본 잠수함 기관장 아들 아키라, 영국 잠수함 함장 킹과 그들 가족이 네덜란드, 일본, 영국을 상호 방문하며 화해와 우정을 상징하는 기념 식수를 했습니다. 네덜란드 잠수함협회와 정부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 정부에 침몰 잠수함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승조원 유해를 예우해달라고 요청해 협조 약속을 받아냈죠. 네덜란드 쪽은 자국 잠수함 항해등을 비롯해 일부 물품을 반환받아 네덜란드 헬데르 잠수함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잠수함 애호 운동을 봐도 유럽은 동아시아와 정치 환경이 다르네요. 독일은 2차 대전을 일으킨 책임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사죄했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유럽 잠수함 애호가들이 화해하고 평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에서 저지른 난징 대학살, 한국인 군대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전쟁 당시 비인도적 행위를 철저하게 고백하지도 사죄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잠수함 함장 출신인 최일 예비역 해군 대령(얼굴 사진)이 2022년 10월 경남 김해 율하거리에 잠수함연구소를 열었다. (사진=최일 예비역 해군 대령 제공)
세계 잠수함대회에 한국에서는 잠수함 함장 출신인 최일 예비역 해군 대령(잠수함연구소장) 부부가 해마다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 소장은 2000년 해군 소령 때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지휘참모대학교에서 유학했습니다. 그때 함부르크 유보트 협회를 찾아가 회원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5년 뒤 한국 해군이 독일에서 214급 잠수함을 도입할 때 인수 책임자로 뽑혀 다시 독일을 찾았습니다. 최 소장은 독일 잠수함 애호가들과 더욱 깊이 교류하게 됐죠.
최 소장은 함부르크 외곽에서 유보트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발터 스토르벡과 친구가 됐습니다. 화물차 운전기사로 일해온 독일인 발터는 유보트에 미쳐 40년 동안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발터는 최 소장보다 열세살 연상인데요. 체력과 경제력이 달려 아카이브를 운영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최 소장은 발터가 수집한 3만점 한 컨테이너 분량 자료를 기증받아 한국으로 실어 왔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 삼아서 2022년 10월 경남 김해시 율하 거리에 상가주택 3, 4층을 임차해 잠수함연구소를 열었죠.
필자는 최근에 연구소를 방문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기함에 게양했던 깃발과 1,2차 대전 사진, 각국 잠수함 모형, 유보트 작전일지 등 희귀한 자료들이 많았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잠수함을 애호하는 시민 10명 안팎이 이곳에 모여 잠수함 포럼을 엽니다. 청소년들이 모형을 만들기도 합니다. 최 소장은 온라인, 오프라인 강의로 잠수함 관계 쟁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람료는 5000원. 사전예약을 해야 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화해와 평화 정신으로 잠수함 애호 운동을 벌였습니다. 우리도 잠수함을 사랑해 취미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해군 잠수함부대와 잠수함 수출 산업을 응원하는 효과가 생기겠고요. 무엇보다 잠수함 원리와 역사, 승조원 생활 등을 종합적으로 공부함으로써 지식 취미에 도움이 되겠네요. 잠수함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겠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말하기와 글쓰기,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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