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바위그림)카노제로에서 로보제로로, 찰림바레 암각화를 찾아서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25)
2024-05-20 06:00:00 2024-05-20 14:28:30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동 경로 지도] 카노제로호수 -> 칸달락샤 -> 로보제로
 
카노제로에서의 마지막 시도
 
전날 저녁 베이스캠프인 코르돈으로 떠나면서 다음날 돌아오겠다던 바짐 씨와 아나톨리 씨는 계속 오지 않고 있었다. 카멘니섬에는 친구인 바짐 씨를 찾아와 머물고 있던 드미트리 씨와 나뿐이었다. 온종일 그들을 기다리면서 나는 드미트리 씨로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우크라이나인인 그는 오래전부터 러시아에서 살고 일하지만 그의 가족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겪었다고 했다. 구소련의 국민으로서 항상 러시아를 좋아했던 그의 아버지는(그리고 그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고 돌아섰으며 그런 현실이 가슴 아프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됐다. 대화중에 래프팅객들이 섬을 찾았고 드미트리 씨가 부재중인 친구 대신 안내를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중에도 래프팅객이 두세 팀 오는 걸 보고 혹시나 기대를 했지만 코르돈에 간 근무자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보호돔이 있는 카멘니섬 외에, 옐로비섬과 고렐리섬 그리고 아지노까야 바위에 위치한 카노제로 암각화를 보려면 아나톨리 씨가 배로 데려다 주고 바짐 씨가 안내를 해 줘야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몹시 낙담했다. 체류허가 날짜를 연장할 수도 없으니 다음날 아침엔 카멘니섬을 떠나야 하는 처지였다. 조바심이 난 나는 드미트리 씨의 도움을 받아 섬의 다른 바위그림들을 찾아 나섰다. 비가 흩뿌리는 날씨 속에 미끄러운 바위들 사이를 한참 헤맸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대신, 오랜 세월 자연의 풍파 속에 만들어진 독특한 바위들이 눈길을 끌었다.
 
코르돈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바짐 씨(원경 중앙)와 아나톨리 씨(전경 우측. 좌측은 방문객 드미트리 씨). 그들은 다음날 돌아오지 못했다. 사진=박성현
 
카노제로 암각화 지점 중 하나인 육지의 해안바위 아지노까야. 사진=박성현
 
다음날 아침 일찍 텐트 밖에서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니 바짐 씨와 아나톨리 씨가 돌아와 있다. 출발해야 한다고 서두르라 한다. 다시 움바강을 건너 박물관 차량과 만날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먼저 다른 암각화 지점에 들르겠다는 것이다.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아주 잠깐씩밖에 그림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나로서는 완전히 좌절했던 터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암각화의 위치를 잘 아는 바짐 씨는 돌아올 배편이 없어 같이 갈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럼 어떻게 그림을 찾나요?!” 나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그는 카멘니섬 바로 옆 육지에 위치한 해안바위 아지노까야까지만 동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아지노까야에서는 사람 형상과 식별이 어려운 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 등 몇 개를 금방 찾아볼 수 있었다.
 
카노제로 암각화 지점 중 아지노까야 바위에 있는 사람 형상. 사진=박성현
 
바짐 씨를 다시 카멘니섬에 내려 주고 아나톨리 씨와 나는 배가 가는 방향에 있는 옐로비섬과 고렐리섬에 차례로 들렀다. 옐로비섬에는 흥미로운 형상이 포함된 300개 이상의 이미지가 있는데, 아나톨리 씨 덕분에 그중 몇 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열심히 그림을 찾아다니며 최대한 많이 보여 주기 위해 애를 썼다. 다만, 옐로비섬에서 꼭 보고 싶었던 바퀴 이미지를 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아나톨리 씨는 예전에 바짐 씨의 야간촬영 작업을 도왔던 적이 있어 바퀴의 위치를 다시 전달받고 출발했지만 워낙 오래 전 일인데다 전문가인 바짐 씨만큼 위치를 기억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전에 본 적이 있는 그림이라 해서 그 위치를 다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바위는 풍화되고 그림은 흐릿해져 식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아나톨리 씨가 찾아낸 그림에는 사람, 배도 있지만 알아보기 어려운 이미지도 섞여 있었다. 옐로비섬에서 한 시간가량 바퀴를 찾아 헤맸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한 우리는 고렐리섬에서 겨우 15분 남짓 암각화를 찾아본 후 다시 길을 서둘러 움바강을 따라 나갔다.
 
카노제로 암각화 지점 중 하나인 육지의 해안바위 아지노까야.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박성현
 
로보제로로 가는 길
 
카멘니섬에서 돌아오는 길은 섬으로 갈 때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약속장소인 니지마강 기슭에서 세르게이 씨가 운전하는 박물관 전지형 차량으로 옮겨 타고, 다시 늪지와 숲길을 달려 다음 환승장소로 가는 것이다. 여건상 기대했던 만큼 암각화를 많이 보지 못해 아쉽다는 내 말에 세르게이 씨가 덤덤하게 답했다. “그게 야생이지요.” 사실, 수차례에 걸쳐 연구팀이 발굴하고 조사한 내용을 단 며칠간 머물면서 보려 한 것은 과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각화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필요하다. 현장에서 보고 받는 감흥이 책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아쉬움을 접고 두 번째 약속장소에 이르니 스베르치코프 박물관장이 어김없이 마을주민의 택시를 대동하고 나와 있다. 감사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그에게 한 가지를 간곡히 부탁했다. 외국인은 허가 없이 움바마을 방문이 안 된다지만 가는 길에 잠깐만 들러 달라고 한 것이다. 움바마을은 콜라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포모르 정착지 중 하나로 1466년에 처음 언급된 역사적인 곳이다. 연어와 청어 낚시, 바다동물 사냥을 주업으로 해 온 곳인데, ‘움바-제레브냐(시골)’로 불리는 구(舊)동네의 전통적인 집들을 꼭 둘러보라는 추천이 있었다. 박물관장이 택시 주인에게 당부한 덕분에 몇 초간 길에 내려 포모르의 나지막한 옛날 집들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여정 도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카노제로 암각화의 일부가 있는 고렐리섬의 모습. 사진=박성현
 
칸달락샤로 돌아와 하룻밤 쉬어가는 동안 칸달락샤의 돌미궁을 안내해 주었던 올랴 씨(본 연재 21회 참고)를 다시 만나 이곳 주민들이 강에서 낚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루어낚시를 하는 중이었다. 백해의 도시다운 흥미로운 저녁 풍경이다. 카노제로호수에서 돌아온 다음날 나는 사미족의 마을 로보제로로 향했다. 카노제로 암각화와 비슷한 듯 다른, 찰림-바레(또는 찰름니-바레) 암각화의 바위 하나가 로보제로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기 때문이었다. 암각화가 있는 콜라반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미족에 대한 관심도 작용했다. 부차적으로, 가능하다면 로보제로 근처에 있는 사미족의 신성한 호수 ‘세이도제로’를 방문하고 호수 기슭에 위치한 바위 ‘쿠이바’도 보기를 기대했지만 이는 이뤄지지 못했다. 쿠이바는 로보제로 툰드라에 산다고 전해지는 사미족 신화 속의 거인이다.
 
카노제로 암각화의 일부인 고렐리섬의 암각화 위치 중 한 곳. 사진=박성현
 
로보제로까지 가는 기차 편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칸달락샤에서 올레네고르스크까지 기차를 타고 그곳에서 로보제로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예전 방식대로 사고하느라 기차노선부터 떠올려 그렇게 됐지만, 나중에 보니 더 빠르고 저렴한 방법이 있었다. 올레네고르스크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만난 청년이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요즘 러시아 곳곳에는 중소도시 사이를 잇는 직행버스가 예약제로 다닌다고 한다. 다만, 전화 예약이 중요하고 인터넷으로 예약해도 전화 확인을 하는 게 안전하다. 통화가 안 되고 승객이 약속장소에 서 있지 않으면 버스가 그냥 가버리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는 전화 통화가 불편한 점이긴 하다. 어쨌든 그가 준 정보 덕분에 로보제로를 떠나 무르만스크로 갈 때는 기차를 거치지 않고 직행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칸달락샤에서 올레네고르스크까지는 기차로 약 3시간, 거기서 로보제로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20분이 걸린다. 시간표상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올레네고르스크 기차역 안팎을 둘러보는데, 도시명의 ‘사슴(올렌, 발음상 알렌)’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역 건물 앞에는 이곳의 특징을 상징하듯 사슴가족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올레네고르스크 기차역 앞의 사슴가족 동상. 사진=박성현
 
움바마을 표지판. 역사 기록에 등장한 해인 1466년이 쓰여 있다. 사진=박성현
 
찰림-바레 암각화를 찾아서
 
“저기 멀리 보이는 게 로보제로 툰드라예요.” 미니버스 기사인 쾌활한 청년이 외국인을 위해 손으로 가리켜 알려 준다. 로보제로 툰드라는 고대 사미족의 문화와 연관이 깊은 산지로 독특한 돌 세이드와 세이도제로호수, 사미족의 전설을 품은 곳이다. 저녁 7시경 드디어 로보제로에 도착했다. 작은 버스정류장 안팎에는 사미족 마을답게 순록그림이 보인다. 이 마을에는 ‘무르만스크주 향토역사박물관 산하 콜라 사미족 역사·문화·생활 영토분과’라는 긴 이름을 가진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이름 그대로 사미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박물관이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찰림-바레 암각화 중 핵심이 되는 바위가 전시돼 있다! 그것을 보는 게 이 마을을 방문한 목적이었다.
 
사미족 마을인 로보제로의 버스정류장 안팎에 순록이 그려져 있는데 암각화 형상을 연상시킨다. 사진=박성현
 
찰림-바레 암각화는 카노제로 암각화보다 먼저 발견됐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던 시기, 콜라반도의 포노이강에 수력발전소 건설이 결정되자 침수가 예상되는 곳의 유적과 유물을 조사하기 위해 1973년 고고학자 슘킨이 이끄는 조사단이 파견된다. 이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은 구 코미족-사미족 마을인 이바노프카(찰림-바레) 북동쪽 외곽 영토에서 암각화가 새겨진 돌 6개를 발견했다. 이후 1989년에는 비슷한 바위 4개가 더 발견된다. 현재까지 기록된 이미지의 수는 6개의 돌에 279개, 나중에 발견된 돌까지 합하면 10개의 돌에 287개다(콜파코프, 슘킨, 무라시킨 공저, ‘찰림-바레 암각화’ 2018, 6쪽). 이중 돌 5에 가장 많은 그림이 집중돼 있는데 이 바위가 1988년 로보제로의 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로보제로의 '콜라 사미족 역사·문화·생활박물관'에 전시된 찰림(찰름니)-바레 암각화의 '돌 5'. 가장 많은 형상이 새겨진 바위로, 1988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사진=로보제로의 '콜라 사미족 역사·문화·생활박물관' 제공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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