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새 식구가 생겼다. 금붕어, 정확히는 코메트라 불리는 물고기 한 마리다. 이름은 붕이.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가 방과 후에 이루어지는 특별수업에서 받아온 것이다. 몇 주 전 한 손에 붕이를 든 채 귀가한 아이는 기함하는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엄마가 키워도 된다고 했다던데?” 한참 전 받았던 문자 한 통이 그제야 떠올랐다. 조만간 코메트 관련 수업이 있을
예정이라며, 수업 후 분양을 희망하지 않는 학부모께서는 꼭 따로 알려달라고. 정신이 없어 답장을 깜빡한 것이 이런 결과가 되고 말았다. 전부 내 불찰이니 누굴 탓하랴. 우선 열심히 키워보는 수밖에. 집 안에 생명은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철칙을 어기고 그렇게 붕이는 우리집 식구가 되었다
예상과 같이,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아이의 호언장담과 다르게 붕이를 돌보는 것은 상당 부분 내 몫이었다. 물을 갈아주고, 수조를 닦아주고, 먹이를 챙겨주고. 작은 물고기 한 마리에게 들어가는 것치고는 매우 귀찮은 작업.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붕이 덕에 둘째가 많이 밝아졌다는 사실이다. 붕이를 받아오기 며칠 전 실은 둘째가 학교에서 활동 시간에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하필이면 성장판 쪽을 다쳤기에 상처의 정도가 어떠한지, 수술이 필요한지 아닌지 등을 검사하느라 이후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아이는 무척 힘들어했다. 드러내놓고 표현은 못했지만 나 역시 그런 아이를 보며 너무나 속이 상했고.
하지만 어떻게 해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던 둘째가 붕이가 들어온 뒤부터 다시 웃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다녀와서, 식사 전후로, 잠들기 전에, 붕이를 관찰하고 붕이에게 말을 걸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옥신각신하며 다투던 오빠와의 관계도, 붕이 앞에서만은 잠깐이나마 평화로웠다. 그러는 동안 다행히 아이의 상처는 큰 탈 없이 잘 나았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보며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애정과 관심을 쏟을 대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이 실은 그 사람을 살게 하는 힘임을.
짐 자무시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산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지에 대한 영화다. 사람들은 소멸과 죽음이 두려워 전전긍긍하지만, 실은 막상 불멸을 누릴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반드시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엄청난 힘과 부와 지식을 지닌 몇백 년 산 뱀파이어들조차 굶주림 앞에 맥을 못 추는 모습이 그려진다. 먹고 사는 행위란 그처럼 고단하고도 지난한 것. 생은 지루하며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한 것. 그렇지만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그와 같은 고단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죽지 않고 살아남기를 택하는데, 이유는 결국 사랑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문득문득, 왜 사나 싶은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결국은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동물을 키우고, 식물을 기르고, 덕질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든 열정을 쏟고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 무언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사랑하지 않고선 이 세상을 견디기가 힘드니까.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역시 또 다른 고통이라는 걸 알면서도, 삶 자체가 야만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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