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굿바이 심상정' 그리고 '조국·이준석'
2004년 JP 퇴장시킨 노회찬…20년 만에 시효 다한 '진보 정치'
2024-04-26 06:00:00 2024-04-26 08:12:50
 
2004년 4월 16일 새벽 2시. 구시대 종말을 알린 일대 사건. 5·16 쿠데타 주역 김종필(JP·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퇴장과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노회찬(전 정의당 의원)의 당선. 정당 득표율 0.18%포인트 차로 엇갈린 애꿎은 운명. 겨우내 짙은 안개 뒤에 가려진 한 줄기 빛이 희미한 일상을 꿰뚫고 다가왔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또 다른 의미의 '세대·세력' 교체가 단행됐습니다. 진보정치의 잔다르크 심상정(녹색정의당 의원)의 낙선과 조국(조국혁신당 대표)·이준석(개혁신당 대표)의 당선. 1985년 구로동맹 파업을 주도한 '철의 여인'은 그렇게 한 줌의 재로 타버렸습니다.
 
JP와 노회찬 운명 바뀐 '20년 전 새벽'
 
바야흐로 20년 전 그날, 동트기 전 펼쳐진 반전 드라마. JP는 '봉쇄조항 3%'에 묶였습니다. 그 반작용으로 진보정치의 족쇄는 풀렸습니다. 인민노련의 노회찬이 '박정희정권 2인자' JP를 밀어낸 대사건. 10선을 노린 JP는 4·19 혁명 44주년을 맞은 해에 역사의 퇴안길로 떠났습니다. 17대 총선의 '마지막 당선자'인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의 등장은 그랬습니다. 
 
43년간 JP가 쓴 영욕의 현대사는 노동을 집어삼킨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JP와 바통터치를 한 노회찬은 '인민의 호민관'을 자처했습니다. '남성 식민지' 문화에 짱돌을 던졌습니다. 2004년 그의 1호 법안은 '호주제 폐지.'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엔 '장미꽃'을 선물했습니다. '우리는 빵(생존) 못지않게 장미(인권)도 원한다'는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 구호를 한국 사회로 소환했습니다. 기득권에도 도전했습니다. 2005년 삼성그룹·검찰·정치권의 검은 유착관계를 담은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폭로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왜곡된 역사의 수레바퀴가 긁은 상처는 깊었습니다. 전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둘 떠나는 동지들 몰래 눈물을 삼켰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찾아온 오월,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맸습니다. 진보정치의 지난 20년은 인고의 시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중 맞닥뜨린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란 별이 진 이후 진보정치는 갈 길을 잃었습니다. 심상정 체제로 명맥을 잇던 녹색정의당은 끝내 실패했습니다. 낡은 비전은 대중정당 노선의 이탈을 불렀고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는 되레 역효과를 냈습니다. JP를 밀어낸 봉쇄조항이 이번엔 녹색정의당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6411번(서울 구로동∼개포동) 버스의 시동은 그렇게 꺼졌습니다.

6411번 버스 멈춘 자리에 '조국·이준석'
 
6411번 새벽 버스가 멈춘 자리에 조국과 이준석이 들어왔습니다. JP와 노회찬 만큼의 극적 관계는 아니지만, 이들의 등장도 드라마틱했습니다. 정권심판론의 기폭제 역할을 한 조국혁신당은 22대 총선의 최대 승자로 등극했습니다. 이준석은 4월 11일 새벽 1시50분께 당선이 확정되면서 개인기 하나로 3전 4기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조국의 등장은 야권 세력의 교체, 헌정사 첫 30대 당 대표를 지낸 이준석의 원내 진입은 세대교체를 일군 일대 사건입니다. 
 
하지만 조국·이준석의 등장이 '혁신인지, 퇴행인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세력·세대 교체를 한 이들의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시대교체입니다. 조국과 이준석이 그 주체라고 단언할 수 없었습니다. 조국은 여전히 '반윤석열=정의'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정치란 공적 시스템을 사적 보복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준석은 '한국판 트럼프'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무릇 정치란 '상선약수'(최고의 선은 물)와 같아야 합니다. 정치공학을 앞세운 권력투쟁에 매몰된다면, 마치 무중력의 상태로 여의도 어디인가를 배회만 하다가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권력을 탐하는 하이에나가 되느냐, 문명사의 풍향계인 시대정신을 선도하느냐. 오롯이 이들의 몫입니다. 노회찬의 새벽 버스는 오늘도 멈춰있습니다. 
 
최신형 정치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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