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통일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자유·평화·번영의 한반도'라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통일미래기획위원회를 구성하고 '신통일미래구상'을 준비해왔는데요.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주춤하던 통일 방안 마련에 윤 대통령이 힘을 실은 겁니다.
새 통일방안에는 북한 인권과 비핵화를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담길 예정입니다. 시대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통일방안 수립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자칫 이념에 기댄 통일방안이 '흡수통일'이라는 '힘에 의한 통일'로 향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유·인권·비핵화' 담는다
지난 1일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 정권의 폭정과 인권유린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자유와 인권의 보편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통일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이런 역사적, 헌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국경일 행사 연설에서 통일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대통령실은 곧바로 "윤석열정부의 통일관, 통일 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제시 30주년이 되는 올해 8월 15일 광복절 즈음에 새 통일방안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관련해 통일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수정·보완안 작성에 착수할 예정인데, 이달 중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곽이 드러납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4일 'KBS 뉴스 7'에 출연해 "북한 주민의 자유, 인권 증진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등 내용이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석열정부 통일 방안은 사실상 '흡수통일'"
현 정부가 수정을 예고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지난 1994년 김영삼정부가 노태우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해 발표한 통일방안입니다. 노태우정부는 이 통일방안 마련을 위해 당시 야권의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총재와 논의했고, 국회에서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화해협력과 남북연합, 통일국가완성이라는 3단계의 절차를 담아 '결과로서의 통일' 만큼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오랜 분단으로 형성된 이질감을 단계적으로 해소해나가는 평화적 통일 방식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1994년 나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화해·협력, 남북 연합, 통일국가 완성이란 기계적 3단계 통일방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때문에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새 통일방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집니다. 윤 대통령은 새 통일 방안의 핵심 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는데요.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통일은 흡수 통일의 또 다른 말"이라며 "결국에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흡수 통일의 경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추구하는 평화적 통일이 아닌 북한 체제의 붕괴를 고려하는 건데요. 현재의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힘에 의한 통일' 비전이 반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독립과 동시에 북녘땅 반쪽을 공산전체주의에 빼앗겼다”며 영토 수복 의지까지 드러냈습니다.
김 장관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헌법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우리 모두 합의한 점"이라며 "헌법 정신에 기초해 통일을 논의한다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는 자유의 가치가 누락됐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데요. 양 총장은 "김영삼정부에서 자유를 부각하지 않았던 건 이미 체제 경쟁이 끝났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통일 방안에 자유를 드러내서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킬 필요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북한 인권이 새 통일방안의 주요 내용이 되는 것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 양 총장은 "인권의 강조도 물론 중요하지만 평화 체제를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또 우리 내부에서도 인권에 대한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입장 차를 좁히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통일과 민족이라는 말을 다 지우고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도 다 철거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상대도 없는 통일방안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냐는 겁니다. 현 정부의 통일 방안 구상이 이념에 치중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달리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 만장일치를 이뤄낸 결과물입니다.
결국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새 통일방안을 마련하면 윤석열정부에서만 유효한 통일방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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