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금융위원회가 전환사채(CB)를 활용한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해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제도개선에 나섰습니다. 과도한 리픽싱을 막아 소액주주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일부 기업들은 CB를 돌려막는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감독당국은 이 같은 기업들의 규제 회피 수단을 인지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습니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프리시젼바이오(335810)는 지난 6일 30억원 규모의 3회차 CB 발행을 결정했습니다. 발행목적은 채무상환으로 지난 2021년 발행한 1회차 CB 상환이 목적입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당시 15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하면서 리픽싱 한도를 최초전환가(1만1400원)의 85%로 결정했는데요. CB 발행 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전환가액은 지난 2022년 리픽싱 한도인 9690원까지 내려갔습니다.
프리시젼바이오의 주가는 지난 13일 현재 4945원으로 전환가의 절반 수준입니다.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채권자들 역시 만기상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CB 만기가 다가오자 새로운 CB를 발행해 1회차 CB 상환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11월 2회차 CB를 120억원어치 발행해 1회차 CB 일부를 만기 전 상환했으며, 이번 30억원어치 CB를 또 발행해 잔액도 모두 상환할 계획입니다.
2회차(120억원) 3회차(30억원) CB로 1회차(150억원) CB를 상환하는 것으로 사실상 ‘돌려막기’입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현금유출을 막을 수 있었지만 주주들은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우려가 커졌습니다.
1회차 CB의 전환가액은 9690원으로 주식전환 가능 물량은 154만7987주, 발행주식총수(1161만4526주)의 13.33%였습니다. 그러나 2회차와 3회차 CB의 전환가액이 각각 5241원, 5028원으로 정해지면서 주식전환 가능물량은 288만6297주(24.85%)로 급증했습니다.
EDGC(245620) 역시 최근 유증을 통해 한도까지 리픽싱된 CB를 돌려막았습니다. 최근 76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는데요. 유증은 실제 현금 유입 없이 기존에 발행했던 CB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주식전환 시 발행주식총수의 3.44%가 될 예정이었던 CB가 19.59%에 달하는 물량으로 늘어났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이같은 돌려막기가 CB 리픽싱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마땅한 대책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에 예고한 제도 개선은 불공정거래 방지에 초범을 맞추고 있는 만큼 리픽싱 규제 우회로 제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 “출자전환 등 신주를 발행해 채무를 상환하는 것은 기존에도 통용됐던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해선 CB뿐 아니라 유증 등 특정인에 대한 신주 발행 제도를 전반적으로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금융위는 최근 제도개선 예고를 통해 CB 발행 시 전환가액 기준을 이사회 결정일이 아닌 납입일 기준으로 정하도록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는데요. 3자배정 유증 등에선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예정입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CB뿐 아니라 3자배정 유증 역시 납입일을 연기하며 시가 반영을 미루는 사례가 많다”면서 “주가 추이를 보면서 납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면 내부자나 특정세력이 악용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현행 3자배정 증자는 최대주주 등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3자배정 유증 등에서도 납입을 계속 연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면서 “유증에서도 현황을 파악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살펴볼 계획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 (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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