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워크아웃 중인 항공기 부품회사 아스트가 개인 채권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스트의 최대주주가 된 유암코가 주식 감자 등 주주들의 희생은 미룬 채 채권자들에게 채무 삭감 또는 출자전환 등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식과 채권의 고유 권한에 대한 상식을 뒤흔드는 일이어서 한국 채권시장의 신뢰에까지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지난 7일 아스트는 제11회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사채권자집회 소집을 공시했습니다. 불과 하루 전에 진행됐던 사채권자집회에서 사측이 의도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자 곧바로 재소집을 통보한 것입니다. 채권자들은 사측의 제안들이 모두 채권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채무 감액 또는 출자전환” 제안
아스트는 보잉과 에어버스에 항공기 동체를 공급하는 우량 부품업체입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난에 휘청이다 지난 3월 알파에어로가 최대주주에 올라서며 구조조정에 나섰습니다. 아스트 지분 44%를 확보한 알파에어로는 유암코(연합자산관리)의 100% 자회사이며, 유암코는 국내 시중은행들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주식을 보유한 부실채권(NPL),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입니다.
아스트는 경영난을 겪는 동안 몇 차례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이중 풋옵션이 있는 BW 채권자들이 조기상환을 청구했으나 갚지 못했습니다. 결국 회사는 지난 7월 채권기한이익상실을 알리고 채권단이 공동관리하는 워크아웃에 돌입했습니다. 유암코와 금융채권단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의결권 확정 △원금 상환유예 및 금리 조정 △신규 대출 지원 △출자전환 △공동관리절차 중단 및 지속 조건 등의 방안에 합의했습니다.
문제는 이 채권단에 포함되지 않은 채권자들과의 갈등입니다. 아스트는 2021년 1월 300억원의 BW 아스트9회를 발행했으며, 2022년 1월엔 아스트11회(BW)로 4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기관이 살 수 없는 BB등급 채권이었기에 대부분 개인이 떠안았습니다. 개인 채권자들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제약을 받지 않아 금융채권단이 회사와 체결한 협약 내용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유암코는 지난 11월 세 가지 제안을 담아 9회, 11회 채권자들을 대상으로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합니다. △채권의 50%를 즉시 갚고 나머지 50%는 주식으로 출자전환하거나 △채권의 85%를 즉시 갚되 나머지 15%는 채무를 면제하거나 △채권 전액을 분할 변제(25%는 즉시 갚고 75%는 매 3개월마다 10회에 나눠 상환)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풋옵션 신청일부터 발생한 연체이자는 면제할 것과 BW의 풋옵션 권리를 없앨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스트가 제작하는 항공기 꼬리 부분 'Section 48'로 부르는 동체.(사진=아스트 홍보영상 갈무리)
주주는 놔두고 빚 깎아달라고?
유암코 측은 금융채권단에 비해 나은 제안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개인 채권자들은 주주는 부실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채권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경우 주주들이 먼저 무상감자, 유상증자 등으로 손해를 감수한 뒤 채권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번 제안은 주주의 희생이 선행되지 않은 채 채권자들의 손해를 요구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열린 사채권자집회에서 아스트9회 채권은 채권재조정안에 동의했으나 아스트11회 채권은 부결됐습니다. 찬성 채권 143억원, 반대 채권 100억원으로 찬성한 금액이 더 많았으나 참석 채권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기준선엔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회사 측은 바로 다음날 즉시 사채권자집회 재소집을 공시해 이달 29일에 또 열릴 예정입니다. 워크아웃에 실패해 회생절차로 가면 채권자들의 손해가 더 커질 테니 받아들이라는 일종의 압박으로 해석됩니다.
이렇게 채권자들의 반대에 막힌 후 즉시 사채권자집회를 재소집한 것은 2016년 현대상선 사례가 유일합니다. 당시엔 두 번째 사채권자집회에서 채권자들이 워크아웃 방안에 동의해 세 번째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세 번째 사채권자집회가 열릴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사측의 제안에 반발하는 개인 채권자들이 더 모였기 때문입니다.
11회 채권자들은 유암코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무상감자 등 주주 희생 없이 채권자가 출자전환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이런 제안이 현실화되면 한국 채권시장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질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채권단이 아닌 채권자들이 손해를 감수한 경우는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DB메탈 등의 선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채권자 대부분이 기관들이었고 이번처럼 개인이 대상이 된 적은 없습니다.
화난 채권자, 가압류·가처분 벼른다
아스트11회 채권 400억원 중 일부는 주식으로 전환했고 약 3억5000만원은 사측의 실수로 풋옵션이 받아들여져 현재 남은 채권액은 385억원입니다. 먼저 열린 집회에서 반대한 금액 100억원에 이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던 채권자들의 합세도 예상돼 사측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긴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개인 채권자들은 회사가 소집한 2차 사채권자집회도 부결시킨 뒤 직접 3차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해 강제집행을 통한 가압류, 가처분소송 등을 결의하고 이를 사채관리회사에 지시하자는 분위기입니다. 사채권자집회는 회사(아스트)와 사채관리회사(흥국생명), 사채권자의 10분의 1 이상이 소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참석 채권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으면 원리금 지급 청구와 이를 위한 소송, 강제집행 신청, 원리금 지급 청구권 보전을 위한 가압류·가처분 등 권한행사를 흥국생명에 지시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파산 회생철차 개시 신청도 가능합니다.
유암코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채권자집회 부결 후 곧바로 재소집을 공시한 것은 올해 안에 개인 채권자들에게 동의를 받아달라는 금융채권단의 요구에 맞추려다 보니 일정상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29일 집회에서도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그 다음 절차에 대해서는 금융채권단 내부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한편, 유암코가 채권자들을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아스트 금융채권단 중 일부의 요구 때문이란 말도 있습니다. 아스트의 채권 은행들이 곧 유암코의 대주주라는 점에서 볼 경우 이해상충 소지도 있는 부분입니다.
회사와 개인 채권자들의 강대강 대결이 어떻게 결론 날지 알 수 없으나, 이번 사측의 제안이 통과된다면 워크아웃 기업에서 주주의 희생 없이 채권자를 압박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뜻이 됩니다. 유암코의 일방통행이 채권시장을 흔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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