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LG에너지솔루션 상장과 함께 밀려났던 SK하이닉스의 2인자 복귀가 임박했습니다. 2차전지의 조정과 반도체의 반등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2차전지 시장에 대한 기대는 크게 줄어든 반면 내년 반도체의 부활을 점치는 의견이 많아 두 공룡의 시총 역전도 예상됩니다. 다만 테슬라가 주춤하고 있을 뿐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멈춘 것은 아니어서 언제든 자리는 뒤바뀔 수 있는 상황입니다.
LG엔솔에 밀려난 SK하이닉스의 귀환
우리 시간으로 2일 새벽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동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글로벌 증시가 환호했습니다. 코스피, 코스닥 시장도 동반 급등세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2차전지 등 그동안 조정폭 컸던 성장주들의 반등 두드러졌는데요.
그럼에도 국내 증시의 2차전지 대장주가 시가총액 2위 자리에서 밀려날 처지에 놓였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9일 3.71% 오른 39만1500원으로 마감했으나 SK하이닉스가 4.16%로 그보다 많이 오르면서 둘의 시총은 91조6110억원 대 91조2186억원으로 0.5% 차이도 나지 않았습니다. 장 초반엔 잠시 SK하이닉스가 2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다음달 두 종목의 시총 차이가 다시 2조5000억원으로 벌어지긴 했지만 2~3% 수준에 불과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같은 결과는 지난 3개월 가까이 2차전지 주식들이 동반 약세를 보이는 동안 반도체 섹터가 횡보하는 중에도 반등을 노린 결과입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월27일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면서 3위 자리로 밀려났습니다. 상장 초기 잠깐 순위경쟁을 벌이기도 하반기 전기차가 대세로 떠오르며 LG에너지솔루션에게 2인자의 자릴 내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연준의 긴축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금리에 민감한 성장주들의 낙폭이 커졌습니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얼굴 역할을 하는 테슬라마저 힘을 잃어 2차전지 섹터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테슬라는 지난 3분기 233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전년 동기보다 9%가량 증가했지만 매출성장률이 꺾인 것이 문제였습니다. 3분기 영업이익도 전 분기는 물론 전년 동기보다 감소해 실망을 안겼습니다.
이 때문에 연초 100달러에서 바닥을 찍고 7월엔 300달러 코앞까지 치달았던 주가가 10월 말엔 200달러를 무너뜨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일본 파나소닉마저 생산을 축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국내 관련 업체들의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2일의 주가 상승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습니다.
HBM 연평균 52%씩 성장
2차전지가 주춤하는 사이 반도체 섹터에서는 HBM이란 새로운 게임체인저의 등장으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은 고대역폭 초고속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 사이에서 빠르게 데이터를 전송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도체를 위로 높이 쌓을 수 있어(스태킹). 데이터 전송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비와 공간 효율성도 좋습니다.
HBM은 GPU를 지원하는 기존의 그래픽DDR(GDDR)의 한계를 넘어선 반도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GDDR은 GPU 주변에 2GB 용량 12개를 배치하는데, HBM은 24GB 4개를 배치하면 됩니다. 최근엔 12개까지 확대했고, 8층으로 쌓은 제품을 주로 쓰지만 12층 제품까지 개발된 상태입니다. 그만큼 대역폭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HBM은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장비, 자율주행 등 엄청난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 대부분의 첨단 IT 분야에 모두 필요합니다. 특히 올해 뜨거운 이슈였던 챗GPT 등 AI 서비스업체와 그래픽업체들이 많이 쓰고 있습니다. GPU의 강자 엔비디아는 국내 업체들에게 HBM을 공급받아 성능이 향상된 GPU를 만들어 구글, MS, 아마존 등에게 판매 중입니다.
HBM은 2013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2016년부터 HBM2 양산을 시작해 이 시장에서 독주했습니다. 삼성전자는 한발 늦은 2015년에 HBM2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 독점 납품하다가 지난 9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 공급 계약을 따내는 등 드디어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상태입니다. 삼성전자의 참전으로 SK하이닉스의 물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국내 업체들은 엔비디아 외에 AMD에도 공급 중입니다. 내년에 생산 가능 물량까지 이미 공급 계약을 끝냈다고 하니 HBM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HBM 시장 규모는 올해 40억달러에서 2027년 330억달러로 연평균 52%씩 성장할 전망입니다.
현재 HBM 시장점유율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더해 50%를 넘고 미국 마이크론이 2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년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모두가 HBM3E 시장에 진입할 계획입니다.
반도체 전망 좋지만 테슬라 무시 못해
올해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를 보면 HBM에서 강한 SK하이닉스가 다른 종목들보다 좋았습니다. SK하이닉스의 파트너 장비회사 한미반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년 HBM 전망도 좋아서 전체 반도체 업종 부활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같은 상황을 참고하면 SK하이닉스의 시총 2위 복귀는 시간문제일 뿐 예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기차와 2차전지의 성장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테슬라의 실적 성장이 꺾이며 국내 관련주들까지 동반 하락했으나,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지난 10월 월간 판매량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전기차가 죽은 게 아니라 테슬라의 성장이 주춤한 겁니다.
내년 시장 전망에선 전기차, 2차전지보다 반도체에 힘이 실린 것이 사실이지만, 테슬라의 저력을 무시할 순 없어 관심을 접기엔 일러 보입니다. 테슬라의 보유현금을 감안하면 오히려 경쟁업체들이 긴장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 투자 고수들은 테슬라가 200달러 아래로 내려온다면 매수로 접근할 것을 권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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