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 디벼보기)좋은 유증 나쁜 유증 이상한 유증
돈버는 유증 대 돈먹는 유증…상황 따라 대응 달라야
대규모 유증 징후, 현금흐름으로 포착 가능
2023-06-29 02:00:00 2023-06-29 02: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좋은 유증’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유증의 목적과 상황이 중요합니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용처를 밝히고 투자자들에게 돈(자본금)을 갹출해달라고 손을 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 주주들에게 손 벌리면 주주 배정 유증이고, 주주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투자를 받겠다는 건 제3자 배정 유증입니다.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전환사채, CB)이나 신주를 받을 수 있는 채권(신주인수권부사채, BW)을 발행하는 것도 사실상 유증과 다름없습니다.
 
기업이 유증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내용상 좋은 유증과 나쁜 유증, 이상한 유증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경영 잘하는 기업이 수익성 좋은 곳, 미래를 위한 투자목적으로 갹출을 요구하는 것은 좋은 유증에 속합니다. 고금리로 비싼 대출채권이자 내느니 추가로 자금을 모아 빚을 갚는 게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계산기 두드려보면 주주들에게 유리한 유증입니다. 
 
오늘(29일)을 신주배정 기준일로 유증을 진행 중인 맥쿼리인프라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맥쿼리인프라는 대전시와 계룡시에서 사업을 하는 도시가스업체 씨엔씨티에너지를 인수하고, 인천김포고속도로 투자를 위해 4000억원을 유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맥쿼리인프라는 2021년에도 유증으로 자금을 조달해 도시가스업체 두 곳을 인수, 주주들의 이익을 키운 전례가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맥쿼리인프라가 이번 유증을 통해 수익성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신한알파리츠도 쏙 빼닮았습니다. 신한알파리츠는 지난 4월 자산 매입과 대출 상환을 위해 유증을 진행하는 등 자산 매입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몇 차례 손을 벌렸습니다. 인프라펀드와 리츠는 상품 특성상 내부에 자금을 많이 유보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 투자를 하려면 유증이 필요합니다.
 
돈 벌어다 주는 좋은 목적의 유증이라도 유증 소식이 나온 직후엔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주들은 주식 수가 늘어나 보유주식의 1주당 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유증이라면 내용을 불문하고 정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주로서는 보유주식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유증에 참여, 일정 비율로 돈을 내야 하니 자금 여력이 부족한 이들에겐 부담이겠죠. 그럼에도 좋은 유증은 좋은 성과를 내 결국엔 주가 상승으로 보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당장 돈이 급해서, 회사의 존립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러 주주들에게 손 벌리는 나쁜 유증이 더 많습니다. 재무상황이 악화된 기업에 추가로 투자금을 대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기업이 부도나기라도 한다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까지 휴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증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기존의 보유주식이 일종의 인질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유증이 ‘마중물 효과(Pump Effect)’를 발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말라버린 펌프에서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한 바가지 물을 붓는 것처럼 유증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입니다. 
 
CJ CGV가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했습니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 유증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최대주주인 CJ가 현물출자를 하겠다고 밝혀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사진=뉴시스)
 
최근 대규모 유증 발표로 논란을 빚고 있는 CJ CGV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CJ CGV는 2017년부터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까지 덮쳐 손실이 크게 불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가용자금을 전부 동원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손을 놓아버리면 오래 못 버티겠죠. 
 
결국 현재 발행된 주식(4772만주)보다 많은 7470만주를 새로 발행하는 유증을 결정해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최대주주인 CJ가 현금은 조금만 내고 나머지는 현물출자로 대신하겠답니다. 현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회사를 현물로 내놓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출자하는 CJ올리브네트웍스의 몸값마저 높게 매겨 주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물론 이런 ‘나쁜 유증’도 마중물이 되어 기업을 살리고 주가를 올린다면 주주들은 추가로 돈을 내고 받은 주식까지 더해 큰 수익을 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투자자들은 이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탈출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대규모 유증이 필요할 만큼 자금사정이 나쁜 기업은 일찌감치 재무상태표와 현금흐름표에서 징후가 포착됩니다. CJ CGV도 현금이 부족해질 때마다 채권을 발행해 보충하는 일을 수년에 걸쳐 반복했습니다. 
 
마지막 유형은, 신규 투자를 빌미로 제3자 배정 유증이나 CB 발행을 진행하는데 결과적으론 대주주 또는 특정인의 주머니를 채우게 되는 ‘이상한 유증’입니다. 이때 신규 투자처는 대개 일반인이 모르는 비상장 중소기업이나 가치 측정이 어려운 특허기술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유증이 이뤄지는 시점은 주가가 많이 하락했을 때입니다. 헐값에 신주를 인수하기 위해서죠. 유증이 끝나면 각종 호재와 뉴스를 뿌리고 그에 반응해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거두는 방식입니다. 
 
CB나 BW를 배정한 경우는, 채권 발행 후 주가가 하락할수록 신주 전환가액이 인하조정(리픽싱)돼 더 많은 주식을 가져갈 수 있게 됩니다. 희한하게도 주가는 전환가액이 리픽싱 하한선을 터치하고 난 후 조금씩 반등하곤 합니다. 발행한 채권으로 인수 가능한 최대한의 주식을 확보했기 때문이란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유증과 투자로 실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주식 수만 늘어나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와도 주주들은 보유주식 가치가 하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유증을 일삼는 기업과 경영진을 두고 상품과 서비스가 아니라 주식을 판다고 합니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작은 기업 중에서 이상한 유증을 하는 경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유증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유증의 목적과 기업의 상황, 유증 조건을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용상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면 피할 게 아니라 추가 투자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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