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가 곧 자본인 시대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안보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국가 간 경제안보동맹은 궁극적으로 자본을 위한 호혜동맹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전제는 ‘자본을 위한 안보’에 무게 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체제나 이념을 뛰어넘어 자본에 우선 가치를 둔 지금의 경제안보블록화는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냉전체제와는 분명 다른 양상입니다. 물론 이마저도 뼛속깊이 지배자의 논리가 반영돼 있습니다.
최근 발 빠르게 움직이는 한·미·일 삼각공조는 결국 안보에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향후 미국을 상회할 것이란 예측까지 나오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강경 드라이브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 전략에 한국과 일본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미국은 늘 한국과 일본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한일 간 야합은 양국의 꼭짓점으로 서있는 미국의 요구와 조율 아래 추동돼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카스라-태프트 밀약이 그랬고,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이 그랬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 정상회담 역시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화답이 있었습니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미국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국빈 초대를 공식화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어조도 이 무렵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과거 한일 우호관계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일 관계는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 군사안보전략상 반드시 해결해야할 숙제가 됐습니다. 미국의 비호 아래 일본 자위권 확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합니다. 더욱이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안보전략 문제는 더 늦출 수 없는 사안이 됐습니다. 중국은 이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육·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4월 26일(현지 시각) 대북 핵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선 ‘핵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됐지만 워싱턴 선언에서 또 하나 주목해서 봐야할 게 있습니다. 한반도는 물론 인도·태평양에서 변화하는 위협에 양국이 대응하기로 결의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워싱턴 선언 10여일 뒤인 5월 7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의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소통하기로 했습니다. 미국도 즉각 환영의 뜻을 전하며 “자유롭고 개방되고 안전한 인도·태평양을 발전시키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워싱턴 선언 발표 후 “패거리 방식”을 버릴 것을 촉구하며 일본의 참여를 적극 견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러나 보란 듯이 일본의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한일 정상회담은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더욱이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맞춰 한·미·일 정상회담까지 예고되면서 한·미·일 삼각공조도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결단으로 한일 관계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고 자평했습니다. 워싱턴 선언에도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추켜세웠습니다. 북방외교를 내던진 한국이 얻은 건 없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도만 높였을 뿐입니다. 국가의 자주권을 저버린 국제외교는 강대국 사이에서 토사구팽 되기 십상입니다. 그것이 냉혹한 국제관계에서의 양육강식입니다. 윤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만 했습니다. 밥그릇을 걷어찬 셔틀외교는 ‘조정’의 역할 없이 ‘배달’만 남겼습니다.
정찬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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