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2호'인 한국제강 사건은 대표이사의 실형으로 유족의 처벌 불원 탄원서가 형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법 시행 유예기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 형량 결정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고요, 또 이를 통해 재벌 기업일수록 실형을 피하기 위해 합의금 지급 등으로 사건이 무마 되지 않기 위한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리는 두 배, 책임은 나몰라라
한국제강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상 경영 책임자이기도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보건총괄책임자 두 가지 지위를 같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대표가 경영 책임자를 맡고 안전보건총괄책임자는 직접 현장에서 안전을 확인해야하기 때문에 건설 현장소장 같은 사람이 맡습니다.
그래서 대표에게 지위가 중첩된 건 그리 일반적인 사례라곤 볼 수 없습니다. 아니, 잘못된 경우입니다. 법원은 바로 그 점을 문제로 삼은 것 같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쌓인 전과라면 모를까, 법이 다 만들어지고 유예기간에도 사고가 반복된 것을 재판부가 좋게 봤을리가 없습니다. 결국 양형 사유에 있어서 유족 합의 보다는 얼마나 안전과 사고 예방에 주의를 기울였냐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대표이사에게 실형이 선고된 한국제강 사건과 집행유예를 받은 1호 사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산업재해 전력'입니다. 초범보다 전과자에게 형량이 가중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따라서 한국제강 대표이사 양형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판례가 없었던 중대재해법 도입 초기에는 '처벌' 위주의 악법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1심 판결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하며 기업 차원에서 사망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시스템을 얼마나 마련했고 충실히 이행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됐습니다.
유족 합의에도 실형…보상 규모 영향 줄까
그렇다면 유족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가 실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보상 규모에도 영향이 갈까요?
법조계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그 이유는 어쨌든 유족과의 합의가 감형 요소이기 보다는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실형을 피할 순 없어도 그렇다고 합의까지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재판부가 얼마나 괘씸하게 볼까요.
물론 보상금 규모를 두고 양측의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 기업과 유족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합의가 필요한 모든 사건·사고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만 유족과의 합의에 있어서 그 액수가 과할 경우는 배임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배임은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2차 분쟁 소지로 남습니다.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중대재해를 전문으로 하는 진현일 변호사는 "성범죄나 절도 등 개인적인 범죄로 인해 회사 비용으로 합의금이 지불됐다면 당연히 배임이지만 중대재해의 경우는 '업무상 생긴 손해'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정 금액을 지급해준다고 해서 바로 배임이 되기는 쉽지 않다"며 "합의금을 회사 비용으로 지급할 경우 회사가 재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데, 그때 배임 문제가 불거지지만 배임을 판단할 기준이나 규모 등은 모호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유족과의 합의는 필수인데 서로 간 합의 금액이 맞지 않을 경우 합의 기간도 길어지고,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금액을 지급하기에는 또 배임의 우려가 있습니다. 중대재해는 이러나저러나 '돈'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26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를 하며 대통령실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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