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에는 큰 기대를 버렸어요. 그냥 조용히 우리 하던 일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겠죠."
인공지능(AI) 스타트업 관계자의 푸념입니다. 수 개월 전만 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는 AI 관련 행사에 우리 회사가 대표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야심찬 포부를 전했던 그는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은 사이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과기정통부의 행보에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정확히는 이종호 장관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는 "반도체 전문가라 그런건지 AI에서도 'AI 반도체' 밖에 모르는 것 같다"며 다양한 AI 분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함을 지적했습니다. 과기정통부가 '인공지능의 일상화'를 앞세우며 초거대 AI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장 일선에서의 체감은 아직 어려운가 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시선이 어느 한 스타트업의 우려에 그치지 않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곧 취임 1주년을 맞는 이 장관은 '학계와 실무를 두루 경험한 반도체 전문가'라는 기대와 달리 존재감이 미미한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언변에 능한 정치인 출신의 장관들과 직접적 비교는 어렵겠지만 소신이 필요한 자리에서도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은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 장관의 취임 초기부터 '칩4 동맹', '망 중립성'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질의를 받을 때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지만 장관으로서는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명쾌한 답변을 피했습니다.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들인 만큼 장관으로서의 입장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은 저만의 생각이었을까요.
이 장관 행보에 대한 아쉬움은 지난달 정점에 달했습니다. '관절염'을 핑계로 전세계 ICT 기업들이 총집합하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한국의 ICT 정책을 알릴 기회를 놓친 이 장관은 같은 달 말 국내 한 통신사의 신규 요금제 출시를 앞장서 알렸습니다. 최근 발표되는 과기정통부의 상당수 정책들이 '국민의 편의를 증진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용산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듭니다.
'스타 장관'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최소한 '정권의 나팔수' 같은 모습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보통신산업은 지금 현재도 시시각각 변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챗GPT처럼 갑자기 등장한 화두가 순식간에 새로운 트렌드의 물결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로지 국익의 관점에서 전문성을 갖춘 민관의 협력이 더 없이 중요합니다. "반도체 전문가지만 여러 분야를 두루 익혀왔습니다. 여러 고민들을 지혜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던 이 장관의 약속이 새삼 기억에 남는 요즘입니다.
김진양 IT팀장(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