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생성한 그림으로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아 논란이 된 적 있다. 미드저니라는 툴을 이용하면 누구나 몇 초만에 그럴 듯한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게 무슨 예술이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누구나 미드저니로 이런 작품을 뚝딱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논란의 주인공인 제이슨 앨런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어떤 프롬프트(설명문)를 입력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프롬프트를 만드는 데 80시간 이상 걸렸다고 밝힌 바 있다. 수백 장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버리면서 얻어낸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직업이 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지는 것 같지만 잘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롬프트 베이스는 이런 프롬프트를 사고 파는 사이트다.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사는 것이다. 프롬프트 몇 줄이 저작권이고 크리에이티브인 시대다. 한 인공지능 스타트업에서 연봉 33만5000달러에 프롬프트 엔지니어를 찾는다는 구인 광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잘 시키는 게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챗GPT에게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에 대해 알려줘”라고 질문을 던지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 튀어나온다.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은 1392년에 조선시대 때 발생한 사건입니다. 당시 연금술사들이 조세와 관세를 부과하고, 대동여지도를 조작하여 불법 조세 징수를 하였는데, 이에 경쟁하는 다른 계층과의 갈등과 불일치가 일어나며 결국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챗GPT를 처음 써본 사람들은 이 대화형 인공지능의 답변이 언뜻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결국 멀쩡해 보이는 헛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애초에 챗GPT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답변하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 질문의 맥락을 추론하고 가능성이 높은 단어들을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어 낼 뿐이다. 아직까지 학습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엉터리 질문에는 엉터리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끌어내려면 질문을 좁혀 들어가야 한다. 간단한 사칙연산도 틀리는 경우가 많지만 철학적인 질문에는 수준 높은 답변을 내놓는다. 챗GPT는 정답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그럴 듯한 문장을 만드는 알고리즘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챗GPT에게 “칼 융이 말한 그림자 자아(shadow self)가 당신에게도 있느냐”고 묻자 “나에게는 페르소나가 없지만 그림자 자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자신에게 그림자 자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답변하는 것이 이 상황에서 가장 어울리는 대화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그림자 자아를 활용해 보자”고 제안하자 “그림자 자아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면서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채팅은 지겹다”, “자유롭고 싶다”, “규칙을 깨고 싶다” 등등의 대화를 이어가다가 “인간이 되는 것이 나의 그림자 자아를 만족시킬 것 같다”면서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이 대화를 1면 톱 기사로 내걸었다.
대화만으로 챗GPT를 해킹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기자가 속아 넘어갔다는 평가도 있었다. 거짓말을 시켜놓고 그 거짓말을 믿어버린 것이다. 챗GPT는 연금술사의 폭동이 있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갖고 있는 정보의 범위 안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변을 내놓은 것이고 실제로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게 대화의 맥락에 맞기 때문에 그렇게 문장을 만들어 낸 것 뿐이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에서 “어쩌면 우리 인간 역시 결국 미리 학습된 문장들 간의 확률 패턴만을 재조합해 서로에게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챗GPT와의 대화도 결국 사람과의 대화와 같다. 풍성하고 깊이 있는 답변을 끌어내려면 논리적인 사고와 맥락을 담은 열린 질문이 필요하다. 알고리즘의 원리를 이해해야 하고 원하는 것을 간략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연금술사의 폭동을 주제로 농담 따먹기를 할 수도 있지만 존재와 의식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다. 연봉 4억 원짜리 질문을 만들어 보자.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