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역에 신혼집을 처음 마련할 때, 집주인은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얼굴 보고 계약하자는 데도 누군지도 모르는 대리인을 보내고, 보증금 영수서를 써달라는 것도 귀찮아하며 겨우 작성해줬습니다. 이쪽에서는 20대를 바쳐 모은 전 재산에 큰 빚을 내 보증금을 마련했는데, 저쪽은 천하태평이었습니다.
집 없는 세입자로서 참고 견디는 방법 외엔 뾰족한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4년을 살고 나갈 날이 다가오자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계약 만료를 기해 퇴거한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반응이 없고, 어쩌다 연락이 닿으면 다음 사람이 오지 않으면 보증금을 줄 수 없다고 하고 바쁘다고 끊었습니다. 정말 애가 탔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부동산 세무사로서 여러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주어진 권리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연락이 닿는 고용인에게 이런 식이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강하게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며칠 뒤 집주인이 저희 집 보증금을 4년 만에 8000만원 올려서 등록한 걸 알았습니다. 이래가지고 제 때에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부동산 상승 분위기가 남아 있었던 데다, 전세대란의 공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집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젊은 여성이 우리 집을 계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 계약이 되면 우리 보증금 10%를 돌려줘서 이사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관례지만, 집주인은 가만히 있다가 내가 강하게 이야기하니 5%만 입금해줬습니다. 끝까지 비협조적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겨우 이사준비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오전에 저희 부부가 퇴거하고, 오후에 뒷사람이 이사를 오기로 돼 있었습니다. 고용인이 집을 확인하러 올 시간에 맞춰, 저는 시위하는 모양새로 거실 한가운데 누워 그를 맞았습니다. 제 돈 돌려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후에 보증금을 다 돌려받고, 그 날로 집주인과 고용인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그 돈을 못 받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최근 빌라왕 때문에 눈물짓는 세입자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공인중개사, 집주인(건축주)가 작정하고 속이면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은 속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빌라왕은 처음부터 보증금 돌려줄 생각이 없이 그 돈을 유흥에 실컷 탕진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무책임하게 세상을 떠났으니,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차제에 전세집을 처음 구하는 분들에게 꼭 조언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먼저 담보물권과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 및 우선변제력, 소액보증금에 관한 공부를 꼭 해둬야합니다. 이런 중요한 지식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답답할 정도입니다. 그 물건이 잘못돼 경매에 부쳐지면 내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는지, 다른 권리자들과 어떻게 경합하게 되는지를 꼭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전에 옥석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보이는 집이라도, 한 순간에 보증금을 날리고 거리로 나앉을 수 있습니다. 서점에 좋은 책들이 소개돼 있습니다. 일주일의 시간과 2만원의 책값만 투자하면, 큰 위험을 줄일 수 있으니 꼭 확인해야 한습니다.
다음으로 내 돈은 내 눈과 내 손으로 지켜야 합니다. 요즘 공인중개사들은 부동산 매매가 없어서 붕어빵까지 팔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중개사가 내 편이 되어 주면 좋겠지만, 절박한 처지에 계약성사에만 눈이 멀어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계약 직전에 발행된 등기사항 전부증명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냥 계약하는 그 자리에서 떼어보자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로, 임대차계약 체결과정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별도의 매매계약이 없다는 확약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권리자의 존재가 없는지도 확약을 받아야 합니다.
새롭게 개정된 국세징수법의 '미납국세 열람제도'도 꼭 활용하기 바랍니다. 만약 물건이 경매에 부쳐지면, 아무리 주의를 기울였어도 집주인의 세금이 먼저 징수돼 본인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라에서도 전적으로 제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정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이 없는지는 세입자가 미리 확인할 수는 있도록 만들어줬습니다. 올해 4월 1일부터 집주인 동의 없이 체납세금을 확인할 수 있으니, 꼭 기억했다가 확인하기 바랍니다.
가급적이면, 주변에 부동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어른이나, 변호사, 세무사를 고용해서 대동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처음 부동산 거래를 하는 사람은 미숙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스스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자존심을 부릴 일이 아닙니다. 사례비가 들더라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일이 잘못되면 삶이 송두리째 파괴될 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정부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는 하나, 제일 좋은 방법은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는 하루빨리 일상이 돌아오기를 응원하고, 앞으로 부동산 계약을 앞둔 분들에게는 각별한 주의를 당부합니다.
권민 미술전문 세무사(MK@mkta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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