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말 그대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 쓰이는 새해 인사말입니다. 지난해 육십간지 중 39번째인 '검은 호랑이의 해'의 신조어는 남 탓 '내로남불'과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과이불개' 사자성어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근하신년을 주고받는 육십간지의 40번째 '검은 토끼의 해'에는 어떤 표현이 어울릴까요. 올해 경제 흐름을 전망하면 '상고하저(상반기 상승·하반기 부진)'로 표하고 싶습니다.
경제 컨트롤타워의 정부 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경기 흐름을 '상저하고'로 예측한 바 있습니다. 때문에 상반기 역대 최고 수준인 65%의 중앙재정을 신속히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즉,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상저’엔 그럭저럭 버틸 여력이 생겨 오히려 ‘상고’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모두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지난해 그럭저럭 버틴 것도 정부 재정의 역할이 컸습니다.
팬데믹(pandemic)의 고통으로 정부가 원금 상환 유예를 조치하면서 빚 독촉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가 있었죠. 손실보상금도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계부채 1800조 시대’의 위기가 올해 상반기부터는 본격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가계와 기업 부채를 합한 규모는 3593조5000억원입니다.
가계부채만 1870조6000억원으로 지난 2019년 1600조원, 2020년 1726조원, 2021년 1862조원 등 매년 100조대의 증가 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실내 마스크 해제 논의가 달갑지 않다는 추론도 내놓습니다. ‘탈 마스크’는 결국 코로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엔데믹 전환 국면을 의미합니다.
풍토병 전환 국면에서 자영업자·중소기업의 빚 상환유예가 계속 이어질까요. 금융 원칙을 들어 추가적인 상환유예는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일관된 목소리입니다.
벌써부터 고금리에 원금상환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는 하소연이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죠. 흑자를 본 중소기업들도 매한가지입니다. 경기부진과 고금리 직격탄에 오히려 유동성 악화에 빠진 기업도 적지 않습니다.
새해부터 채권조정 전문가들이 한 곳에 모여 채무조정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어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습니다.
‘추경(추가경정예산)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하던 추경호 부총리. 올해 하반기 ‘하저’ 흐름을 감안하지 않고 있다면 추경은 필요 없겠죠. ‘하반기쯤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을 보면 어느 분 말에 한 표를 줘야할까요.
연초부터 불어 닥친 리스크는 또 있죠.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화한 중국의 보복 행보입니다. 대중국 무역이 만성적자의 고착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일 경유 비자' 금지 등 외교적 갈등이 번질 경우 교류·협력 환경의 단절은 또 다른 나비효과가 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각 기관별 전망 중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가장 낮게 본 수치는 1.4%입니다. 그나마 1.7%를 제시하던 한국은행도 ‘경기 하방 압력’을 운운하며 이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샤머니즘 문화에 기대진 않지만 '개묘년'에는 부디 한국경제호가 복을 싹쓰리하길 염원해 봅니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