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오는 12일로 156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발생 2주가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사 당시 국가가 부재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고, 2주간 주요 책임자 경질 등 윤석열정부의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에 참사 희생자 유가족 사이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벗어나려고 시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간이 지나자 참사 당일 '국가는 없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에 있던 한 신고자의 "이태원 메인 골목으로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다급한 구조 전화가 접수됐다. 이후 민원 신고가 잇따랐지만, 경찰은 참사 이전 접수된 11건 가운데 4건만 출동했고, 나머지는 출동 안내 수준에 그쳐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약 4시간 뒤인 오후 10시15분경 해밀턴호텔 앞을 낀 내리막길에서 사람들이 대거 압사당하면서 156명이 사망했다. 이태원 참사는 502명이 사망한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최대 참사로 기록됐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는 예방이 가능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된 이후 첫 핼러윈 축제였기 때문에 이미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137명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대부분 마약 단속에 집중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성만 민주당 의원실이 4일 경찰청으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용산경찰서는 참사 당일 정보과·경비과 소속 경찰을 단 한 명도 배치하지 않았고, 혼잡경비를 맡는 기동대도 사전 배치하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서초 사저에는 2개의 기동대가 배치·대기해 대조를 이뤘다. 현장 안전을 책임질 경찰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면서 차량 통제, 인파 관리 등에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경찰이 마약단속에 집중하면서 이태원 혼잡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정부는 처음부터 없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112상황실장으로부터 ‘핼러윈 데이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를 받고도 별도 질서 관련 지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발생 수일 전부터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는 용산서 정보과 보고서를 받았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용산서 정보과장과 정보계장은 핼러윈 기간 안전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직원을 회유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보계장은 대기발령 상태로 있다가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럼에도 윤석열정부는 그간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윤 대통령은 참사 발생 바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주최자 없는 집단행사에도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야권에서는 "마치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서 참사가 발생한 것처럼 그 원인을 제도 탓으로 돌리는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직격했다. 실제로 2년 전 개정된 경찰법에는 이미 주최 없는 행사에 대한 경찰의 안전 관리 책임이 명시돼 있다.
주무부처 수장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성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또 7일 행안위 현안질의에서 "현 법령상 경찰 사무를 지휘할 권한이 (행안부장관에게)없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6월 행안부 내 경찰국 설립 당시 "(행안부장관에게)경찰청의 업무가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강조한 자신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가 애도 기간 중인 1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통역 관련 문제가 벌어지자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라고 웃으며 농담을 건네 빈축을 샀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 인사들과 인사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참사 관련해 논란이 계속되자 윤 대통령은 참사 발생 엿새 만인 4일에서야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추모 위령법회'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공식적인 첫 사과였으나 방식·표현 등을 두고 논란이 지속됐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7일 재차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석상에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은 윤 대통령이 엄숙한 대국민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며 재차 대국민 사과를 요청하고 있다. 대다수의 역대 정권이 대형 참사가 났을 때 대국민담화 형식으로 엄숙한 사과를 했던 전례를 따르라는 요구다.
여론도 윤 대통령 사과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11일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8~9일, 전국 성인 1058명 대상)에 따르면 국민 57.3%는 윤 대통령의 사과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충분했다'는 응답은 37.4%에 그쳤다. 보수 지지성향이 강한 부산·울산·경남조차 '사과가 불충분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윤 대통령은 오히려 두 번째 사과 직후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왜 4시간 동안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강도 높게 질타하며 결국 경찰로 책임을 국한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여기에 10일 MBC 여론조사에서 국민 54.4%가 사퇴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이상민 장관마저 엄호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10일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에 책임자 경질 등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일축했다.
여권도 이러한 윤 대통령의 '경찰 책임론' 기조에 발맞추고 있다. 한 총리는 8일 "집회가 일어나는 용산 쪽에 치안 담당하는 분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 분명히 국가는 없었던 것"이라며 정부 책임론을 인정하면서도 경찰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모습을 유지했다. 여당 의원들은 국정조사 기간 경찰의 책임론을 집중 거론했다.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 관계 부처 장관들의 브리핑에서 한덕수(왼쪽)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처음 이번 참사를 '사고', 희생자를 '사망자'라고 표현한 점도 논란을 가중시켰다. 애초 정부가 마련한 합동분향소 현판의 첫 문구는 '이태원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였다. 정부는 부처 등에 근조 글씨가 없는 검정 기본을 쓰라는 지침까지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모두 책임에서 한 발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다. 이에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조차 2일 "사고 또는 사망자는 최대한 무색투명한 용어를 쓰고 싶다는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참사가 맞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참사라는 국가적 사안에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8일 운영위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을 주고받아 논란을 낳았다. 대통령실 참모로서 사려 깊지 못했다는 질타가 잇따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다음 날 "정부의 명백한 과오로 인해 156명이라고 하는 꽃다운 생명들이 생명들을 잃었는데, 그 원인을 규명하는 장이 웃겨보이느냐"고 지적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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