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연내 개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 부처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최고책임자를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로 두자는 경영계의 입장을 노동부에 전달한 것이 알려지면서 '법 무력화' 시도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요구방안이 법적 근거가 부족한 동시에 재해 예방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없앨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재부는 올해 초 중대재해법 연구용역을 통해 'CSO를 경영책임자로 본다', '사업장 안전보건 인증을 받으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본다' 등의 내용이 담긴 요구방안을 노동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8월31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행령이 위임 입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입법 취재에 맞게 (시행령 개정)을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 말하며, 사실상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비췄다.
하지만 이후 지난달 14일 노동부가 '중대재해법상 위임이 없는 규정을 시행령에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제처에 문의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기업 총수에 대한 중대재해 면책을 요구해온 재계의 압력으로 기존 입장을 틀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같은 해석에 이 장관은 지난달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제처 질의는 전문가 사이 의견이 달라 마지막으로 의견을 구해본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또 "법률에 위임된 범위 내에서 시행령을 만들겠다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재차 밝혔지만, 노동계에선 정부의 중대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책임 완화 움직임을 즉각 중단하라는 촉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경영계 입장을 받아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대재해법에 경영책임자에 대한 정의을 시행령으로 구체화한다는 위임명령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법인(유) '지평' 중대재해TF 윤상호 변호사는 "법에 위임이 없는데 그걸 구체화라는 미명 하에서 개정하는 것은 오히려 입법 기술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문은영 민변노동위원회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 역시 "CSO를 책임자로 둔다는 내용을 개정안에 넣게되면 상위법에서 기업 책임자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지만 위임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위헌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법조인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법 제정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란 의견도 있다. 최정학 방통대 법학과 교수는 "지금 경영계 주장은 이사회와 법인 정관에서 정한 사람을 CSO로 두고, 그 사람이 처벌을 받으면 최고책임자는 책임을 면하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최고 책임자를 직원 안전에 신경 쓰게 하자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처벌하고자 하는 사람은 처벌 못하게 되고 결국 산재를 예방하는 효과가 법 시행 이전과 동일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의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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