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로 세계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주요국들은 보조금을 자국 전기차 산업 육성책으로 활용하고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중 패권전쟁에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망 위기가 커지면서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한 결과물이 바로 IRA"라며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독점하고 있다는 위기와 견제가 전기차 보호주의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사진=뉴시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IRA의 보조금 관련 세부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
자동차업계는 IRA가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에 이르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에 '북미 최종 조립'을 명시한 만큼 이 규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당분간 수출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한 부품을 배터리에 얼마나 사용하는지,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핵심 광물을 어느 국가에서 얼마나 채굴·가공하는지에 따라 보조금액이 달라지지만 현재
현대차(005380) 아이오닉 6나
기아(000270) EV6 등 현대차·기아 전기차는 전량 한국에서 생산된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로 했지만 2025년 완공 예정이다.
공영운 현대차 사장도 지난 4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보조금 액수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저희 차를 선택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장벽을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선언했음에도 '뒤통수'를 맞은 현대차를 비롯한 다수의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IRA 시행 이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차는 포드, 크라이슬러, 지프 등 11개 브랜드의 일부 차종뿐이다. 이중 6개가 미국 브랜드다.
현대차 아이오닉 6.(사진=현대차)
미국만이 아니다. 전기차 보조금으로 자국의 실익을 추구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자국 정부가 장려하는 배터리 교환 서비스(BaaS) 기술을 적용한 차량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급 가격 기준(차량가격 30만 위안 이하)에서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또 자국 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도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일본은 재난 발생시 전기차로 비상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외부전력 공급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산 전기차 및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은 외부 급전 기능이 장착돼 있다. 해당 기능이 없는 외산 전기차에 비해 차량 1대당 보조금 상한액이 20만엔 더 높게 책정된다.
유럽 역시 이탈리아는 피아트 '뉴 500 일렉트릭'의 판매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전기차 1대당 최대 2000유로의 특별 보조금을 추가했다. 독일의 경우 폭스바겐 ID.시리즈가 출시된 2020년 전기차 1대당 보조금을 최대 9000유로로 증액하고 지급 기한을 2025년까지 연장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자국 완성차 기업이 소형 전기차 생산에 집중함을 고려해 저렴한 전기차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전기차 보호주의가 IRA를 계기로 더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연합회(KAIA)는 IRA 시행으로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해 매년 10만대 이상의 전기차 수출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수치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만기 KAIA 회장은 "전기버스 보조금 중 약 50%를 중국산에 제공하는 국내 보조금 제도 개선은 물론 전기차 수입 촉진책으로 변질되고 있는 무공해차 보급목표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전기차 가격 기준만 있을 뿐 수입차에도 보조금을 동일하게 지급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가 올해 상반기 수입 전기 승용차 업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전체 전기차 보조금의 20% 수준인 822억원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약 447억원이 미국산 전기차 업체에 지급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수입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를 지원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자국산 제품의 특성을 고려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방식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울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처럼 보조금을 통한 전기차 시장을 보호하기에는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시장이 크지 않고 미국이나 중국처럼 강대국도 아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차별적 보조금을 지급하게 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며 "수소 버스나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지 못하는 차종 쪽으로 보조금 정책 방향을 바꾸는 등 자국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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