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프랑스 서북부인 노르망디 인근에는 루앙(Rouen)이란 도시가 있다. 바이킹 침략, 종교 전쟁, 프랑스 혁명, 세계 2차 대전 같은 역사적 극변기를 거친 곳. 삶과 죽음의 질문들이 데칼코마니처럼 고개를 맞대고 있을지 모르는 곳.
"루앙은 음악적인 신(분위기, 기반)의 불모지입니다. 사망 선고를 당한 것처럼요. 역설적으로 그것이 우리 밴드의 음악, 사운드를 형성했습니다."
지난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 뒤편. 공연 2시간 전, 대기실에서 만난 프랑스 팝밴드 타히티80은 여느 록스타처럼 자유분방하면서도 그들 음악처럼 섬세하면서도 지적인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멤버들, 자비에르 부와예르(보컬·기타·키보드·피아노·베이스), 메데리끄 곤티에(서브보컬·기타·키보드), 실뱅 마르샹(드럼·퍼커션·키보드·피아노), 페드로 르상드(베이스·키보드·프로그래밍·퍼커션)는 "17살 때까지 루앙에서 자란 우리 밴드는 주변 레퍼런스가 될 만한 팀이 없었기에, 오히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음악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루앙이 우리에겐 이점이 된 셈입니다. 이후 팀으로서 정체성을 다진 뒤 파리로 갔습니다. 문화, 역사적으로 자석처럼 사람들을 당기는 도시죠."
지난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타히티80.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1995년 결성된 밴드는 2000년 데뷔작 '퍼즐(PUZZLE)'부터 올해 초 신보 '히어 위드 유(Here with You)'까지, 총 9개의 정규 앨범을 발표해왔다. 나비(butterflies), 햇빛(sunshine) 같은 예쁜 단어들을 아름답고 산들한 멜로디, 맑은 음성으로 구현해내는 팀이다. 사운드 역시 동화적이다. 섬세한 기타 리프, 사이키델릭한 키보드, 희미한 질감의 코러스가 무척이나 아기자기하다. 신스 기반의 트로피컬과 선샤인 팝부터 기타가 비중이 큰 인디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록의 하위 장르들을 탐험해왔다.
앨범을 돌리는 순간, 음악은 표지('The Sunshine Beat, Vol.1')에 그려진 노란 컬러감, 상큼 달콤한 키위향처럼 톡 하고 터져 오른다. "밝은 햇살 같은 우리 사운드가 타히티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냐고요? 네. 모든 것은 그것이 일어나는 일종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가 우중충한 다른 회색 도시들과 비교하면 타히티는 마법과 같은 놀라운 곳이죠. 그래서 우리 음악은 다른 곳에 있기를 소망하는 일종의 현실도피주의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팀명 유래가 된) 타히티 섬이 프랑스 령이라는 것 또한 우리가 프랑스 사람들이라는 일종의 힌트인 셈이죠."(자비에르)
지난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타히티80.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프랑스 출신이지만 밴드명의 '80'를 '에이티'라 부르고, 가사 또한 영어라는 점이 특이한데, 이에 대해 자비에르는 "음악 자체의 만국공통적인 느낌 때문"이라며 "사운드를 만들땐 (가식적으로 그런 척 하는 것이 아닌) 순도 높은 순수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를 테면, 하늘의 풍경이나 사랑에 빠지는 감정처럼 심플한 것들"이라 설명했다.
"죽음에 대한 노래는 쓰지 않으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그 자체로 위협적이며, 우리 감정을 다운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많은 생각을 않고 우리 음악을 듣는다면 악곡과 가사, 색채 모든 것이 하나로 조화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로울 수 있는 음악을 만들려 하는 편입니다."(자비에르)
지난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타히티80.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전 세계가 힘든 시기를 관통한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이들 역시 느낀 지점이 많다. 2년 반 동안 공연이 중단되면서 "전체적으로 음악계가 취약한 시스템에 놓여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고립에 그치지 않고 원격 녹음 작업으로 만든 게 올해 초 발표한 신작 'Here with You'다. 팝·알앤비 프로듀서 줄리앙 비뇽과의 협업으로, 활기있게 너울대는 댄스 팝 멜로디를 록에 섞어낸 음악은, 코로나 터널의 어둠에도 밝은 빛을 내뿜는다.
"보컬 이펙터의 능숙한 사용 뿐 아니라 줄리앙은 현대적인 음악을 잘 만들 줄 아는 프로듀서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작들과 비슷한 사운드 질감을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추가하고픈 바람이 있어 줄리앙과 함께 했습니다. 가사의 경우 팬데믹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코로나 테스트를 반복적으로 해야했고 부모님과 포옹하거나 키스할 수 없는 이 상황들이 너무나 특이했으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음반을 준비하며 아기도 태어났고 가정적인 축복, 행복에 관한 생각들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자비에르)
지난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타히티80.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수록곡 'UFO'는 좋아하는 순수의 대상을 UFO에 빗댄 특이한 가사 발상이 돋보이는 음악. 당신들이 남긴 곡들이 UFO를 타고 외계 행성으로 간다면, 이라 묻자 자비에르가 "흥미로운 질문"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에게도 많은 밴드들이 CD를 줍니다. 운전하며 이동할 때 그들의 CD를 듣죠. 듣는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창 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결국에는 그만큼 좋은 음악들만 살아남는 셈이죠. 200년 후, 누군가 다른 문명에서 우리 CD를 듣는다면, 우리 음악이 옛 문명에서 살아 남은, 최고의 음악이라 생각해주길 바랍니다."(자비에르)
지난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타히티80.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한국 록 밴드 더보울스(The Bowls)의 음악을 이들은 좋게 들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베이시스트 페드로 르상드와 보컬 자비에르는 더보울스가 올해 초 발표한 정규 3집 '블래스트 프롬 더 패스트(Blast From The Past)'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이들은 "프랑스 밴드로서 우리가 미국, 영국 밴드와 사운드의 질감이 다르고 독특한 것처럼 더보울스에서도 비슷한 지점을 느꼈다"며 "소프트 록과 인디 록의 특징을 지녔지만 한국적 배경이 아주 이국적으로 들리는 팀"이라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공연으로 한국을 찾아온 이들은 "한국의 관객들의 호응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 것을 늘 행운이라 느낀다. 우리에게 항상 많은 에너지를 주기에 이 곳에 돌아오는 것은 늘 기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음악 여정을 특정 공간이나 여행지에 비유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음악은 해안가를 달리는 로드트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애틀이나 캘리포니아처럼 말이죠. 한국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국가이지 않나요. 우리의 음악에는 줄곧 물이라는 테마가 있었습니다. 바다 경관이 펼쳐진, 해안가를 달리는 여행의 사운드 트랙을 생각해주세요."(자비에르)
지난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타히티80.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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