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가 관행적으로 오남용되고 있다는게 문제다. 포괄임금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공짜 야근은 이어질 것이다."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을 미리 정해 매월 일정액을 연봉에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 제도 폐지에 대한 요구가 IT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포괄임금제 제도가 공짜 야근과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윤석열정부에선 포괄임금제 폐지는커녕 최근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늘리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도입 추진에 나섰다. 기업들이 현재 '주 최대 12시간 단위'로 운영 중인 연장근로 시간을 '월 최대 52시간' 단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노동계에선 정부의 조치가 이행된다면 일주일에 기본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52시간을 더한 최대 92시간까지도 연장근로 시행이 가능해져 과로사회로 회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목표로 일명 칼퇴근법(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현행 제도를 이행하기 어려운 데다, 포괄임금제라는 관행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공짜 야근은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져서다. 심지어 대기업에서조차 인력을 늘리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줄이는 격이라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서 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은 뒤로 하고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현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정책을 두고, 특히 IT업계에선 재계의 요구만 반영한 생산성 확대 중심 정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그간 관례로 여겨져온 일명 크런치모드(게임 출시 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집중 근무하는 형태)가 확대된 정책과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출시일정에 맞춰 결과물을 내야하는 개발직들을 중심으로 과로사 문제가 숱하게 터져나오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한 것이 불과 수년 전이다. 개발중인 게임의 출시 시기가 변경될 경우에는 크런치 모드가 연장되는 경우도 상당수다. 2017년 크런치모드로 과로사한 20대 개발자 사례를 비롯해 웹 디자이너 과로자살까지 장시간 노동으로 야기된 사회적 문제는 여전히 이곳저곳에 과제로 산적해있다.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해법은 공짜 야근을 허용하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늘어난 근로시간만큼 연장 근로 수당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것은 노동의 양이 아닌 노동의 질 개선이다. 특히 창의력을 요구하는 IT전문직종의 경우엔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환경부터 구축돼야 노동 효율을 근본적으로 올릴 수 있다. 지난해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게임사가 늘긴 했지만 크래프톤, 네오위즈 등 일부 게임사들은 여전히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다. 규모가 작거나 노조가 없는 중소게임사들은 더욱 더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다.
포괄임금제 폐지가 됐더라도 인력 부족으로 휴가조차 쓰기 어려운 여건에 있다는 불만도 상당하다. OECD 국가중 한국은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번째로 가장 과로하는 나라에 올라있다. 일하는 만큼 돈을 더 주거나, 사람을 늘려 일을 줄이거나. 해법은 단순하다. 복지 없는 성장은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이 줄곧 요구해온 유일한 해결방안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선율 중기IT부 기자(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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