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피의자 신상공개...일본은 돼도 한국은 안된다?
아베 신조 저격범 신상, 일본 언론에 당일 배포
한국, 피의자 신상공개 '특강법'상 심의 거쳐야
"엉뚱한 사람 범죄자 몰릴 경우 피해 회복 어려워"
2022-07-11 17:16:06 2022-07-12 09:52:29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저격한 야마가미 데쓰야의 사진은 일본 언론에 의해 당일 배포됐다. 당시 현장에서 범죄 사실이 발각돼 주변 목격자들과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 체포 등의 과정이 촬영돼 가능했다. 반면 한국은 같은 사건이 발생해 촬영됐다 할지라도 피의자 사진에 모자이크를 하는 등 피의자 신상을 당일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8일 총격 당시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가두 유세를 하던 중이었다. 다수의 시민은 물론 언론도 이날 현장에 있었다. 이 때문에 야마가미가 범행 당시 아베 뒤에서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과 총격 당시 상황, 야마가 체포되는 과정 등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됐다. 일본 언론은 당일 이러한 현장 상황을 모자이크 없이 보도했다.
 
지난 8일 일본 나라시에서 가두 연설을 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총격을 가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있다.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총을 손에 쥐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경우 일본 언론과 같은 보도는 불가능하다. 우리 법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8조2항은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때 몇 가지 규칙을 정해놓고 이를 따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제정된 특강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 알 권리 보장, 피의자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할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만 19세 미만)이 아닌 경우 등에 따른다.
 
이 같은 증거가 충족됐다고 전부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신상 공개를 결정하는 심의위원회 개최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남았다. 국수본이 범죄 사건 피의자에 대한 신상이 공개돼야 한다고 결정하면, 심의위원회를 열고 판단을 맡긴다. 심의위원회는 7명의 위원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4명 이상이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돼야 하고 3명은 경찰 내부위원이다. 심의위원회의 회의 이후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된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이 같은 절차가 없다. 헌법재판소가 2021년 발표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에 관한 헌법적 연구>에 따르면 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에서는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취지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는 이들 국가가 표현의 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를 중시하고 신상 공개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섣불리 미국과 일본 등지처럼 피의자 공개를 결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찰이나 검찰이 피의자로 특정하기만 했을 뿐 유무죄 판단이 이뤄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범죄 사실이 재판을 통해 밝혀지기 전, 피의자로 특정되기만 해도 범죄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는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려 신상이 공개됐을 경우 그의 가족이나 본인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재판이 몇 년이 걸리고, 그 이후 무죄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동안 피의자는 범죄자로 낙인찍혀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베 피격과 같은 사건은 한국도 시간 차만 있을 뿐 신상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신상 공개를 통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는지 아니면 그 피해자의 개인 사생활 침해가 더 심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법익의 균형을 맞추어서 판단해야 할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인천 중구 신포동 한 노래주점에서 40대 손님을 살해하고 시체를 야산에 유기한 30대 업주 허민우가 2021년 5월14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허씨는 이후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지며 얼굴이 공개됐지만, 당시는 모자이크 된 채 언론에 보도됐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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