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인천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걸음, 같이 걸을까' 만남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97 기수론(90년대학번, 70년대생)이 제3주자로 떠올랐다. 20대 대통령선거와 6·1지방선거 패배 책임론과 함께 당권을 둘러싼 계파갈등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는 동시에 정치·세대교체도 이루겠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97 기수론은 과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40대 기수론,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주축이 된 정풍운동을 모델로 한다. 다만 이들 중 뚜렷한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 데다, 친문과 친명으로 양분되는 현 당내 구도와 전당대회 경선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당내에서는 강병원, 강훈식, 김해영, 박용진, 박주민, 전재수 등이 전대에 나설 97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가나다 순) 이중 지난 대선 경선에도 나섰던 박용진 의원은 20일 전당대회 경선 방식과 관련해 민심 반영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나마 있는 10%의 민심 반영을 위한 국민 여론조사조차도 '역선택 방지조항'으로 인해 민주당을 향한 변화의 요구를 외면하는 구조"라며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전당대회, 승리하는 정당을 만들 수 있는 변화의 에너지가 넘치는 전당대회가 되기 위해 민심 반영 최소 50%의 제도적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경우 전당대회 예비경선(컷오프)에서 당심과 민심을 각각 절반씩 반영하며, 본경선은 당심 70% 대 민심 30%를 반영해 치러진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예비경선은 당의 기득권인 중앙위원회 투표를 거쳐야 하며, 본선은 당심 90% 대 민심 10%의 비율이 반영된다. 당심의 경우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당원 여론조사 5%다. 97그룹 등 당내 기반이 약한 신진세력들이 태동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당심과 민심과의 괴리도 여전히 문제점 중 하나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현재 당내에서는 민심 비율의 확대보다 대의원과 권리당원 비율 조정을 놓고 계파 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권리당원과 대의원이 무려 85%나 반영되면서 계파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다"며 "계파정치가 과대대표되어 자칫 민심과 괴리된 지도부가 선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되고 후보자들은 이를 의식해 더 쎈 주장과 자극적인 목소리만 낸다"며 "전당대회가 민심을 모으지 못하고 오히려 민심이 떠나는 대회가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이와 함께 전날 이재명 의원의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발언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민주국가에서 정당은 특정세력이 아닌 국민의 것입니다. 정당은 국민의 그릇이라 물을 담으면 물그릇,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라는 과거 3년 전 이재명 의원 SNS 글을 언급하며 "말씀대로 정당은 당원의 것이면서 또한 국민의 것이다. 민심을 외면한 정당은 결코 민주국가의 정당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친명계를 중심으로 거론되는 권리당원 비중 상향 조정을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낡은 인식"으로 규정했다.
강훈식 의원은 지난 17일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깊이 고민하고 있다”며 “민주당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무겁게 듣고 있다”고 했다. 박주민 의원도 이날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출마와 관련해 “지금은 말씀을 듣는 단계”라며 “어제도 선배 의원 두 분 정도가 여러 이야기를 주셨다”고 여지를 남겼다. 전재수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각 계파를 대표하는 이재명·전해철·홍영표·우원식 의원의 불출마를 압박하며 “이런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어야 되는 그 역할에 저도 일정한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강병원 의원은 지난 14일 KBS라디오에서 “역사적인 사명이 맡겨진다면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는 지난 16일 “혁신의 핵심은 결국 ‘새로움’”이라며 “이번 전당대회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가치와 철학, 당의 노선을 재정립하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고 97 기수론에 힘을 실어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의원실로 첫 등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들이 실제 전당대회에 나설지는 지도부 체제 및 전당대회 룰 변경이 핵심적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안규백 전대준비위원장이 강조했듯 현행 단일지도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변경될 경우 이들의 출마 가능성은 높아진다.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 선출하는 단일지도체제 대신 순위대로 지도부에 입성하는 집단지도체제는 주목도가 남달라 이변을 일으킬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 또 박용진 의원이 주장한 것처럼 97그룹은 친문, 친명에 비해 당내 세력이 약해 전당대회 경선방식 변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앞서 천·신·정은 지난 2000년 정풍운동을 통해 권노갑 고문 등 정권 핵심 실세였던 동교동계 퇴진을 이끌며 당의 신주류로 부상한 바 있다. 이들은 16대 대선 이후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97 기수론을 바라보는 당내 기류는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을 혁신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든 동참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97 기수론으로 거론되는 이들 중에 뚜렷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이 단일대오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1차 관건이란 지적이다.
게다가 전재수 의원의 '곁불' 발언을 놓고 86그룹의 반발도 상당해졌다. 앞서 전 의원은 지난 16일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1970~80년대생들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86그룹이 (70년대 기수론에)동조하면 곁불이라도 쬘 수 있도록 우리가 만들어 드릴 텐데, '우리가 더할게'와 같이 그 흐름도 거부하면 곁불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곁불을 쬐게 해주겠다가 뭐냐"며 "70년대생 기수론에 찬 물을 끼얹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친노, 친문으로 있다가 정세균 등지고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쪽에 붙은 걸 당내 모르는 사람들이 있느냐"며 "자신의 처신부터 바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역시 86그룹의 다른 의원도 "이러면 대안으로 떠오르다가도 역풍을 맞는다"고 그의 발언 내용을 질타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97 기수론은 결국 세대만 달리할 뿐 어떤 혁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없다”며 “단지 ‘이재명은 출마하지 말라’는 데 힘을 보태고 있어 기존 당권 경쟁의 연장선상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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