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우리사주 배정물량이 사라지고 있다. 금리상승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로 국내 증시가 하락장을 이어가면서 대어라 불리던 종목들마저 공모가를 밑돌자 직원들의 자사주 매입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특히 최근 상장을 준비하거나 상장한 기업들의 경우 우리사주 배정 물량이 0%인 기업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표=뉴스토마토)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장을 준비 중이거나 상장을 완료한 기업들의 우리사주 배정 평균 물량은 전체 신주발행량의 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나
케이옥션(102370) 등 대어들이 출격했음에도 5%를 넘지 못한 것으로, 이는 작년 하반기(8.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최근 상장한 기업들의 경우 우리사주 우선 배정없이 일반청약 100%로 신주를 발행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IPO 일반청약 경쟁률 3763대 1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갈아치운
포바이포(389140)와 부진한 증시 속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가온칩스 등도 우리사주 사전배정 물량이 없었다. 올해 공모주 중 우리사주 배정이 10%를 넘긴 종목은 LG엔솔과 케이옥션을 제외하면
노을(376930)이 유일했다.
무리하게 우리사주 배정물량을 늘린 기업들의 경우 상장을 철회했다. LG엔솔을 제외하고 우리사주 물량 20%를 계획했던 기업은 현대엔지니어링과 SK쉴더스, 원스토어, 테림페이퍼 등으로 모두 신규상장을 철회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유상증자나 IPO에 나서는 기업들은 공급주식의 20% 이내를 우리사주조합 우선 배당할 수 있다. 신규상장 기업들은 상장 전 직원들의 수요조사를 통해 우리사주물량을 우선 배정하고 우리사주 청약에 나선다. 우리사주 청약은 일반 청약에 비해 보다 많은 주식을 배정받을 수 있지만, 우리사주조합원은 취득 주식을 1년간 의무예탁해야 한다.
즉, 상장 후 주가가 상승하더라도 1년간은 주식 매도가 불가능한 것이다. 작년에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한 카카오뱅크나 카카오페이 직원들의 자사주도 손실구간에 들어섰다. 보호예수로 상장초기 매도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표=뉴스토마토)
지난 17일 종가 기준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주가는 각각 4만원, 8만8700원원이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고점(24만8500) 대비 64.31% 하락하면서 공모가(9만원)를 밑돌고 있으며, 카카오뱅크(9만4400원)는 고점 대비 59.76% 하락하면서 공모가(3만9000원) 주변을 맴돌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는 직원 1인당 각각 3억3188만원, 4억9014만원에 달하는 우리사주를 배정 받았다. 고점에서 매도했을 경우 직원 1인당 수억원의 차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보호예수로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크래프톤(259960) 역시 직원들의 속내가 복잡하다. 크래프톤은 상장 당시 20% 물량을 우리사주조합에 주선 배정했는데, 이날 종가는 24만원으로 공모가(49만8000원)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크래프톤은 직원 1인당 평균 1억3147만원의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6000만원이 넘는 손실을 본 것이다. 지난해 우리사주 발행(1.33%) 상장사 중 하락률이 가장 큰 곳은
바이젠셀(308080)로 공모가(5만2700원) 대비 59.20% 나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IPO를 통한 우리사주 배정이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IPO의 매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1년의 보호예수를 버티기 힘들 수 있다는 진단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규 상장기업들이 초창기 수익률을 이어가지 못하면서 IPO시장의 투자매력이 작년 하반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며 “시장이 위축된 만큼 직원들의 우리사주 매입도 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창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의 IPO 시장은 지난해처럼 활황을 이어가긴 힐들 것으로 보인다”며 “LG엔솔과 크래프톤 등 대어들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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