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디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정치다. 종편이 등장하고 유튜브 등의 대안매체가 기성언론을 대체하는 동안에도 한국 미디어가 정치를 다루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정치뉴스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숫자를 셀 수조차 없이 많은 방송들이 비슷비슷한 포맷의 시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여기에 참여하는 정치인, 시사평론가, 전문가, 관료, 시사엔터테이너 등이 이미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유튜브의 한 시사프로그램은 실시간 슈퍼챗으로 유튜브 1위를 찍었고, 레거시 미디어의 고루한 형식을 떠난 대안매체의 시사프로그램에서, 각종 음모론과 선동은 일상이 됐다. 한국인의 절반이 유튜브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 정치뉴스의 쇼비즈니스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넘어, 한국사회를 지체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실 이런 문제의 기원은 레거시 미디어다. 플랫폼이 티비와 라디오에서 유튜브로 바뀌고 있을 뿐, 레거시 미디어가 정치를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쇼비즈니스라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한시간 남짓으로 구성되는 한국의 각종 뉴스프로그램은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나오는 헤드라인의 99%는 무조건 정치다. 전쟁이나 거대한 재난이 없다면, 정치가 모든 뉴스의 첫 꼭지가 되는 일은 한국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모든 언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극적인 방식으로 정치인의 말을 전달하거나 두 거대 정당 간의 논란을 보도한다. 한국 뉴스만 보고 있으면, 한국의 정치는 엉망진창이다. 청와대 이전 문제로, 당선인 배우자의 비리로, 현 국방장관의 말 한 마디로,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뉴스 속에서, 외국에 비춰진 한국사회의 모습은, 정치적 아노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의 레거시 미디어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고 편성하는 주제 중 하나는 스포츠와 연예계 뉴스다. 스포츠뉴스라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을 따로 방송하면서도, 뉴스의 마지막엔 하루 동안의 스포츠 소식이 꼭 편성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큰 사건이 없으면 국제뉴스는 잘 편성하지도 않으면서, 스포츠뉴스엔 전세계 스포츠뉴스가 총망라된다. 방송3사의 국제뉴스 비중은 겨우 10% 남짓에 불과하다.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국가의 대표적인 뉴스가, 이렇게까지 국내정치와 스포츠에만 몰두하고 있는 풍경도 참 이례적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한국의 뉴스는 레거시 미디어와 대안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국내정치를 스포츠와 같은 엔터테인먼트로 다루면서 생존해나가는, 시사를 가장한 총체적 황색언론의 물결이다.
며칠전 미항공우주국 NASA의 화성정찰위성이 화성 표면에서 탐사 중인 중국의 탐사로버 ‘주룽’의 모습을 관측해 지구로 송출했다. 2021년 5월 화성에 착륙한 주룽은 화성 북반구의 넓은 평야지역인 유토피아 평원을 조사하고 있었다. 실제로 주룽은 지난 1년여 동안 화성의 표면의 침식 작용이 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수많은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오고 있다. 같은 날, NASA가 무려 12조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초대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지구로 송출한 사진도 공개됐다. 웹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제작된 그 어떤 망원경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모든 은하를 딥 필드 이미지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웹이 발견한 수억년 전의 은하의 기록이, 당장 우리의 먹거리산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정치에만 매몰되어 국민 대다수가 한국 밖으로 시선조차 돌리지 못하는 국가의 미래와, 대부분의 국민이 화성과 우주를 바라보는 국가의 미래가 같지는 않을 것이다.
3월10일엔 게이츠 재단이 후원하고 영국 생명공학회사 옥시텍이 진행하고 있는 말라리아 모기 퇴치를 위한 유전자 변형 모기의 방출이, 미국 환경청에서 승인되었다. 아마 조만간 유전자 드라이브를 장착한 수백만 마리의 수컷 이집트 숲모기가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일대로 방출될 것이다. 환경단체의 우려가 존재하지만, 한 해에 2억명이 넘는 세계 인구가 말라리아에 감염되는 현실에서, 유전자 드라이브 모기는 말라리아 백신 및 치료제 개발과 함께 시험해볼 만한 가능성 중 하나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확인되었지만, 빌 게이츠와 그의 게이츠재단은 지난 20여년간 글로벌 헬스, 국제개발, 교육 등에 65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한 결과, 소아마비 환자수를 99% 이상 줄이고 백신접종을 통해 매년 1300만명의 생명을 살렸고, 1900만명이 넘는 에이즈 환자를 치료해왔다. 게이츠재단이 주로 글로벌 헬스를 위한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다면, 빌 게이츠 자신은 좀 더 혁신적인 사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소형모듈원자로인 SMR이다. 한국은 대선후보 토론에서 RE100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소모적인 논쟁만 하고 있을 때,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속에서 처절한 생존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소모적인 정치논쟁은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주룽이 화성에 남긴 선명한 바퀴 자국과, 웹 우주망원경이 보낸 먼 우주의 딥 필드 이미지를 보면서, 많은 상념이 떠오른다. 윤석열정부는 한국을 과학기술 선도국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디테일과 방법론에 대한 그림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과학기술 분야 인수위 구성을 봐도 과학기술 현장의 전문가를 중용하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것 같고, 대부분이 행정관료 출신의 정책전문가들뿐인 듯 해서 기우가 앞선다. 게다가 과학기술분야 인수위에 미디어 분야의 전문가들을 포진시킨 이유도 궁금하다. 물론 어차피 이런 우려는, 두 거대 정당의 당쟁만을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루는 미디어 쇼비즈니스 속에 묻힐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정치가 바라보아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계속해서 가르키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의 대통령은 국내를 넘어 세계를, 세계를 넘어 우주를 바라봐야 한다. 제발 그렇게 되길 바란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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