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직장상사 성희롱, 회사 메일로 공유…명예훼손 아니다"
"공공 이익 위한 것…비방 목적으로 보기 어려워"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상고심서 벌금형 선고 원심 파기
2022-01-24 06:00:00 2022-01-24 06: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회사에서 당한 성희롱 피해 사례를 내부 구성원과 메일로 공유한 것은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봐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며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에서 정한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본사 마케팅본부 마케팅팀 사원이었던 A씨는 매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은 이후인 지난 2016년 4월4일 전국 208개 매장 대표 이메일과 본사 소속 직원 80여명의 회사 개인 메일로 '성희로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와 당부의 건'이란 제목으로 성희롱 사실을 알려 당시 HR팀장인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B씨는 2014년 10월20일 퇴근 후 A씨를 포함한 다른 사원 4명과 가진 술자리에서 테이블 아래로 A씨의 손을 잡는 등 신체적인 접촉을 했다. B씨는 이 술자리가 끝날 무렵부터 약 3시간 동안 12회에 걸쳐 "오늘 같이 가요", "집에 데려다줄게요", "남친이랑 있어 답 못 넣은 거니"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A씨는 아무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이후 A씨는 2016년 3월21일 매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고, 그해 4월3일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힌 다음 날 B씨의 성희롱 내용을 공유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메일 발송 후 진행된 인사위원회 결과 B씨는 같은 달 6월 경영지원본부 EHS팀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A씨는 그달 20일 퇴사했다. 
 
A씨는 같은 달 6일 직장 내 성희롱이 있었다면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대표이사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지만, 그해 5월23일 증거 불충분으로 행정 종결 처리됐다. 
 
1심은 "피고인이 원하지 않은 인사 발령을 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 사건 메일을 작성했다고 보이므로 피해자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된다"면서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A씨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이메일을 전송한 피고인의 주된 동기나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설령 부수적으로 전보 인사에 대한 불만 등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범죄의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이 사건 술자리에서 이성의 부하 직원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고, 피고인에게 성희롱적인 내용이 포함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스스로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면서 오히려 B씨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메일의 수신인을 매장 대표와 본사 소속 직원들로 한정했고, 이메일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등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이메일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그 동기를 밝히고 있고,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예방 등 관련 규정과 '매장 내 불편부당한 내용 신고안내문'을 함께 첨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2015년 4월1일부터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었는바 피고인이 직장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이를 문제 삼거나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을 들어 피해자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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