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문재인정부가 임기 말 마지막 카드로 꺼내든 '종전선언' 구상도 난관에 봉착했다. 북한의 도발에 미국이 추가 제재로 대응하고 북한이 이에 다시 반발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는 등 북미 관계도 악화일로다. 종전선언의 키를 쥔 미국이 대화를 통한 외교적 접근에서 강경 대응으로 기류가 변하면서, 한미 간 최종 조율 단계인 종전선언 문안도 백지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외교가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섰다. 북한은 지난 5일과 11일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각각 한 발씩 발사했고, 14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발사했다. 특히 14일 미사일 발사는 미국을 향해 "더욱 강력하게 반응하겠다"는 경고 담화를 발표한 지 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미국의 추가 제재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기조로 받아들여졌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5일 공개한 사진에 14일 북한군이 평안북도 철도에서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명확히 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간) 한미 외교장관 전화통화에서 토니 블링컨 장관이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다수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며 이를 규탄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은 12일(현지시간) 대북 제재 대상 인원을 확대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추가 대북제재를 제안했다. 북한이 새해 들어 두 차례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하는 등 무력시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압박이었다. 북한도 미국의 추가 제재 추진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14일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2발을 발사하며 맞대응했다.
북미 관계가 다시 갈등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문재인정부의 종전선언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북미 관계가 도발과 제재가 악순환하는 긴장모드로 접어들면서 사실상 종전선언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실용적 외교와 대화에 중점을 둔 미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미국이 다시 제재로 압박하며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6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제 종전선언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돼 버렸다"며 "미국이 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일단 대북제재를 추가했다는 것이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종전선언 추진은 지속하더라도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라든지, 미국의 새로운 대북제재 이행이라든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메시지가 강화되면 대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지난해 8월25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관해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외교 자문을 맡고 있는 인사들도 종전선언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문재인정부 초대 통일부 차관을 지낸 이재명 후보 직속 천해성 평화협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1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임기 내 종전선언 실현 가능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미국의 대북 문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멀어져 있고, 북한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국경봉쇄 어려움이 있는 데다, 한국 대선 등 새 정부 출범 때까지 한반도 상황을 관망할 여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위성락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실용외교위원장도 지난 13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유튜브 채널에서 종전선언 관련해 "대화 재개라는 실질적 결과로 이어지길 예상하긴 어렵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남북의 주요 정치 일정을 봤을 때 상황 관리도 쉽지 않다. 단기적으로 보면 오는 4월까지 북한이 도발적 행동 등으로 반발할 만한 대형 이벤트들이 줄지어 있다. 3월에는 코로나 확산세에 따라 연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이 '대북 적대시정책의 상징'으로 여기는 한미연합훈련이 계획돼 있고, 4월에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추대 10주년(11일)과 김일성 생일 110주년(15일) 등이 예정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2월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달 말 열릴 가능성이 있는 한중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에 마지막 변수가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양무진 교수는 "과거에도 중국이 한반도 평화 안정이라는 큰 틀속에서 때로는 남북 대화를 중재하기도 했고, 북한을 설득해서 교류 협력에 속도를 내는 사례들이 있었다"며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서라도 한중 화상회담이 꽉 막힌 남북관계를, 대화를 재개하는 하나의 계기점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북한은 14일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대북 단독 제재에 대한 반발과의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며 "20일 후면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의 우려를 의식해 한반도에서 긴장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자제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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