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박한나 기자] 이낙연 후보가 11일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 대선주자 선출에 반발, '무효표 이의제기'를 당에 요청했다. 사실상 경선 불복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다.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이낙연 후보는 '결과에 승복하며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해 민주당 정권재창출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었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 선출 두 시간 만에 뒤집혔다. 당일 이낙연 후보 측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뉴스토마토> 취재로 복기해 봤다.
8~9일 '평당원 백의종군'으로 가닥
지난 8일부터 이낙연 캠프는 바쁘게 움직였다.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결선투표마저 좌절이 유력한 상황에서 경선 후 입장과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이낙연 후보와 캠프 내 의원들이 모인 의원단 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회의에선 이낙연 후보가 경선에서 지더라도 이재명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는 걸로 가닥이 잡혔다. 방법이 문제였다. '원팀'을 거스르는 불복으로 비칠까 염려가 오가면서 '추후 거취는 당의 뜻에 따르겠다'는 대안도 나왔다.
강경파로 꼽히는 설훈·홍영표·최인호 의원 등은 '평당원 백의종군' 선언을 제안했다. 이낙연 후보는 경선 중에 종로 의원직을 사퇴했으니 경선에서 지면 어차피 평당원 신분이 된다. 경선 후 당 차원에서 꾸려지는 선대위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등 별도 직책을 맡기보다 계속 평당원으로 머물며 '정권재창출을 위한 밑거름'이 되자는 주장이다.
9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기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플랜B도 제시됐다. 3차 슈퍼위크 선거인단(서울·경기) 투표율이 1·2차 슈퍼위크 투표율보다 높아진 점을 고려, 후보의 거취는 최종 결과를 지켜본 뒤 당의 판단에 위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9일 캠프 상임부위원장인 신경민 전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평당원 백의종군으로 결정된 건 아니다"라면서 "당에 위임하자는 쪽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민 의원은 "당의 뜻에 따른다면 결국 원팀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10일 오전 이낙연, '평당원 백의종군' 마음 굳혀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적어도 10일 오전까지 이낙연 후보와 캠프의 기류는 '평당원 백의종군'으로 굳어졌다. '불복' 의사를 표명할 뜻은 전혀 없었다. 비록 선대위 합류에는 일단 선을 긋지만, 어쨌든 "결과에는 깨끗하게 승복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캠프 핵심 관계자도 10일 낮까지는 "그간의 의원단 회의 등을 통해 입장을 정했다"며 "이기든 지든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며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 후보 입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10일 오후 '3차 슈퍼위크 이변'…'대세론' 침몰
10일 오후 6시, 장장 102일 동안의 민주당 경선을 마감하는 서울 경선 및 3차 슈퍼위크가 공개됐다. 분위기는 사실상 이재명 후보의 '대선후보 확정'. 이재명 후보가 과반이 되느냐보다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냐에 관심이 쏠렸을 정도다.
이재명 후보는 9일까지 치러진 10차례의 경선 중 25일 광주·전남 경선을 제외한 9차례 경선에서 모두 과반 1위를 차지했다. 9일 경기 경선에서도 현직 도지사의 '안방 효과'를 활용, 59.29%의 득표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재명 후보의 낙승 분위기는 서울 경선까지 이어지는 듯 했다. 서울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4만5737표(51.45%)를 획득, 이낙연 후보(3만2445표, 36.5%)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박용진 후보(사진 왼쪽부터), 추미애 후보, 이낙연 후보, 이재명 후보가 경선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변은 3차 슈퍼위크에서 일어났다. 총 30만5779명의 선거인단 중 24만8880명이 투표한 3차 슈퍼위크에서 이재명 후보는 7만4441표, 28.30%를 얻는 데 그쳤다. 11회차 경선과 세 번의 슈퍼위크에서 이재명 후보가 얻은 최저 득표율이다. 반면 이낙연 후보는 15만5220표, 62.37%를 가져가는 압승을 연출했다.
최종 누적득표율에서 이재명 후보는 50.29%를 확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본선 직행 기준인 과반(50.0% 이상)을 겨우 0.29%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턱걸이'였다. 지난 9일 10회차 경선까지의 누적득표율이 55.29%였던 것을 고려하면, 단 하루 만에 누적 득표율이 5%포인트나 빠진 것이다. 101일 동안 '이재명 대세론'을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다가 불과 하루 사이에 '불안한 후보'로 바뀐 셈이다.
10일 밤 설훈·홍영표, '무효표'에 주목
민주당 대선후보가 확정되고 이재명 후보가 수락연설문을 낭독하던 그때 설훈·홍영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이낙연 캠프 의원들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지난달 정세균·김두관 후보가 중도 사퇴하면서 발생한 무효표 처리 방식은 문제가 있고, 당 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뜻을 모았다. 사실상의 경선 불복.
설훈·홍영표 의원은 전날 밤 8시30분쯤 기자단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10일 밤 캠프 소속 의원 전원이 긴급회의를 갖고 당 대선후보 경선 무효표 처리에 대한 이의제기를 규정된 절차에 따라 당 선관위에 공식 제출키로 했다"고 밝혀 민주당을 발칵 뒤집어놨다. 이들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대선후보 경선 후보의 중도 사퇴 시 무효표 처리가 결선투표 도입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며 이유를 댔다.
지난달 15일 중도 사퇴한 정세균 후보, 26일 사퇴한 김두관 후보의 사퇴 이전 득표를 당 선관위가 0표로 처리하면서 결과적으로 이재명 후보 누적득표율이 올라갔다는 주장이다. 만약 선관위가 정세균·김두관 후보의 득표를 무효로 처리하지 않았다면, 이재명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49.32%에 그친다. 결선투표가 가능해진다.
1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승복'에서 '불복'으로…이낙연, 명분과 실리는?
3차 슈퍼위크 선거인단 투표 결과는 수치 자체도 놀랍지만, 결과도 의미심장하다. 이낙연 후보가 설파한 '이재명은 불안한 후보, 이낙연은 안전한 후보'라는 주장에 수도권 민심이 요동친 것으로 분석된다. 수도권 민심은 특히나 부동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동시에 3차 슈퍼위크 결과에서 드러나듯 이재명 후보의 절대 지지층은 20~30%에 불과한 걸로 파악, 이재명 후보에게 강성 친문과 중도층 흡수라는 과제를 남겼다.
주목할 건 이낙연 후보가 이번 '무효표 이의 제기'로 얻을 명분과 실리다. 당초 이낙연 후보와 캠프가 '평당원 백의종군'을 선택할 때 가장 고려한 건 '원팀'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이다. 그간 대장동 공세와 관련해 '내부총질'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터라 민주당 원팀을 공개적으로 저해한다면, 차후 본선에서 민주당이 패할 경우 그 책임은 이낙연 후보가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재기도 어려워진다.
이재명 측 핵심 관계자도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역대 대선과 경선에선 불복으로 결과가 바뀐 사례가 없었다"며 "민주당이 본선서 지면 이낙연 후보가 '원팀 흔들기'를 해서 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내가 이낙연 후보 참모라면 어제 결과를 인정하고, 어쨌든 수도권 민심의 60%를 득표한 것을 통해 정치적 지분을 확보해 차후를 기약하자고 제안할 것"이라며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1.5%포인트 차이로 졌지만 승복해 후일을 도모한 게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낙연 캠프에선 그간 민주당의 무효표 처리에 계속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건 논란의 소지가 계속 있었다는 걸 말한다"며 "'무효표 이의 제기'를 경선 불복 프레임으로 보고 이걸로 민주당이 본선에서 패할 걸로 보는 건 단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3차 선거인단에서 이재명 후보가 참패한 건 수도권 민심이 대장동 의혹 등에 따른 이재명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당 관계자는 "경선 불복을 던진 뒤, 송영길 대표와 이재명 후보가 사태를 수습하려고 협상을 요청하길 기다리겠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며 "정치적 지분을 얻어 나중을 도모하겠다는 계산"이라고 의심했다.
최병호·박한나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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