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이재용 사면 대세 아닌가
2021-05-26 06:00:00 2021-05-26 06:00:00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문 대통령에게 한 가지 중요한 결단 사항이 놓여있다.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 문제이다. 사면 요구가 각계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빗발친다.
 
 국내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가 지난달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여전히 어려운 데다 반도체 경쟁이 격렬해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가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막아야 한다는 요지이다.
 
지방자치단체 및 종교계 등 사회 각계에서도 사면론이 분출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청원이 떴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난달 20일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은 특히 놀랍다.
 
이재용 부회장을 영어의 몸으로 만든 것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다. 그렇지만 같은 사건으로 실형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요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전직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판이한 것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 필요성을 인정하는 반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냉담한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로서도 마음 편하다.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거론될 경우 문제가 복잡하고 공연히 정치적 논란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부회장만 따로 떼어놓으면 오로지 경제적 실용적인 측면에서 판단하면 된다. 문제가 훨씬 단순해지는 것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핵심적인 변수는 반도체 경쟁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 와중에 반도체 수급난이 가중되고,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 투자를 끌어들이려 한다. 지난 21일 미국 상무부에서는 또다시 반도체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삼성전자가 참석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20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를 사실상 결심한 상태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난 13일 반도체 산업전략을 발표했다. 510조원 가량의 투자와 반도체벨트 조성 등 굵직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연구개발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도 담겼다. 
 
그런데 이런 계획을 실현하는 핵심주체는 역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민간대기업이다. 그리고 그런 투자를 감행하는 데는 역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같은 총수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
 
이렇듯 반도체는 이제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에 있어서도 중요한 관심사가 돼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까지 이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주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의외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몇몇 여론조사 결과 찬성론이 우세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를 되살리기를 바라는 염원이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한국에서 국정농단 사건 같은 것은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긴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요구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집권당의 여러 인사까지 사면 필요성에 동조한 상황이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 사면은 거의 대세가 된 것 같다. 문 대통령의 최종결심만 남은 셈이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걸림돌도 남아 있다. 이를테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어차피 불구속 재판으로 진행될 일이다. 최종판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다. 당장 큰 변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더 큰 걸림돌은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 자신의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나름대로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18년 이후 삼성전자의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미등기임원의 신분이기에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미등기임원이면서도 거액의 보수를 챙기는 다른 재벌총수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준법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만약 사면을 받는다면 그 후에도 그런 자세를 이어갈 것인지가 문제이다. 이런 의심이 우선 해결될 필요가 있다. 삼성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에 앞장설 것이라는 확신이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확신이 선다면 이 부회장 사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결론짓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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