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사칭하고,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의혹을 받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직원들에 대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사참위는 13일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슈 대응과 피해자 소통 업무를 담당한 직원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들 직원은 지난해 5월 '가습기 살균제 항의행동 밴드'의 실명제 전환 과정에서 피해자가 아닌데도 피해자라고 속여 지속해서 게시글을 열람하는 등 밴드 운영자와 피해자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참위는 애경산업 소속 직원이 피해자를 사칭하고, 사찰했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SK케미칼 소속 직원도 2018년부터 제3자 명의를 사용해 피해자 온라인 모임에서 활동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SK케미칼 소속 직원이 가입해 활동한 피해자 온라인 모임은 '가습기 살균제 항의행동 밴드', '가습기 살균제 4차 접수 판정 정보 공유',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포럼' 등 4개에 달한다. 이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소속 직원은 본인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참위 조사 결과 해당 직원과 그 가족 구성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제출된 수사요청서에는 이들의 피해자 사칭과 사찰 행위에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일부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됐으므로 이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참위에 따르면 SK케미칼은 올해 1월 소속 직원이 사참위로부터 출석 요구를 통보받은 직후 해당 직원의 업무용 PC를 교체했다. 이 직원은 사참위에서 조사받기 전 SK케미칼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사무실을 방문해 피해자 온라인 모임에 로그인한 적이 있으며, 이후 사참위 조사 과정에서 온라인 모임 접속에 사용한 휴대전화가 아닌 다른 휴대전화 단말기를 조사관에게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애경산업 소속 직원은 지난해 초 '가습기 살균제 항의행동 밴드'에 가입한 후 피해자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해 주간보고 또는 애경산업 임직원이 있는 SNS 단체방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상급자들에게 보고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발생 이후 사내에 가습기 살균제 TF를 구성해 국회 국정조사, 검찰 수사, 피해자와 언론 등에 대응해 왔다. 이 과정에서 증거인멸, 증거은닉 등 범죄 행위가 밝혀져 업체 관계자들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거나 재판에서 실형 등을 선고받았다.
최예용 가습기살균제참사진상규명소위원장은 "가해 기업들이 참사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 채 피해자를 사칭하고 피해자들을 사찰한 행위는 또 다른 형태의 2차, 3차 가해를 한 것"이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가해 기업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그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고, 이에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피해자 사찰이 아니라 피해자들과의 진정한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국 조사1과 김유정 과장과 전찬영 조사관(사진 왼쪽부터)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소속 직원에 대한 수사요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