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도시정비사업 수주 시장에서 ‘10조 클럽’ 시대가 도래하면서 건설사 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3분기 기준 상위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 누적 수주액은 39조원에 육박하며 전년 대비 10조원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 가운데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나란히 연간 수주액 1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10조 클럽’ 첫 주자 눈앞…현대·삼성 양강 체제
2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서울 성북구 장위15구역 재개발 사업(공사비 약 1조4663억원)수주가 유력합니다. 해당 사업지 수주가 확정되면 현대건설의 올해 누적 수주액은 10조1541억원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는 현대건설이 2022년에 세운 자체 최고 기록인 9조3395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로 업계 최초 '10조 클럽' 가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는 셈입니다.
삼성물산 역시 여의도 대교아파트(약 7500억원 규모)와 은평구 증산4구역(약 1조9435억원) 수주가 유력한 상황입니다. 삼성물산이 이를 모두 확보할 경우 현대건설에 이어 10조 클럽에 가입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처럼 상위 기업들이 도시정비사업 수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배경에는 자금 조달 능력, 브랜드 신뢰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역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압구정, 성수 등 고가 재건축 사업이 몰린 지역일수록 사업 안정성과 시공사 신뢰도가 입찰 조건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수조 원대의 재건축사업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는 조합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건설사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SK에코플랜트, 현대엔지니어링 등은 올해 수주 실적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수주 시장에서 존재감이 급격히 낮아진 상황입니다.
SK에코플랜트는 기존 주택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반도체 플랜트와 환경 관련 신사업에 집중하면서 도시정비 수주 비중을 줄였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연이은 안전사고 여파로 인해 사실상 올해 정비사업에서 철수한 상태입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은 대규모 인력과 자금이 필요한 만큼, 안전 문제나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회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주 격차 키우는 브랜드…최상위권 ‘독주 체제’ 구축
주요 사업지 수주 여부에 따라 대형 건설사들의 전년 대비 수주 증감률에도 차이가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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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대비 도시정비 수주액이 184% 증가하며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삼성물산은 107% 증가, GS건설은 6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 ‘홈그라운드’로 불렸던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사업(사업비 약 9500억원)을 따낸 것이 수주 증가의 핵심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용산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리적, 역사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지역인 만큼 대형 재개발사업 수주에 성공한 것이 상징성과 실익 면에서 모두 큰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SK에코플랜트는 48% 감소, 현대엔지니어링은 100% 감소하는 등 전년 대비 도시정비 수주 실적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인 여의도 대교아파트. (사진=송정은 기자)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체 건설업 경기가 어렵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도 최상위권 업체들은 일정 수준의 일감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다”며 “정비사업 시장의 수요자인 조합 입장에서도 대형사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기 때문에, 우량 건설사 중심으로 수주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은형 위원은 “정비사업 수주는 착공과는 별개의 단계로 시공사 선정만 이뤄져도 수주 실적에는 포함된다”며 “특히 지난 윤석열정부 시절 도시정비사업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추진되면서 시공사 선정이 늘어난 것도 올해 수주 증가의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비사업의 대형화는 향후 시장의 구조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들이 초기 사업 안정성을 가장 중시하다 보니, 결국 자금력과 브랜드를 갖춘 대형사가 더 유리해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향후 정비사업 수주 시장이 소수 대형 건설사 중심의 독식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며 “예전에는 브랜드보다 가격이 우선시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합이 사업 리스크를 줄이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면서 브랜드 신뢰도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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