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증시 주변자금이 크게 증가하자 유상증자 등 기업들의 자금 조달도 활발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들의 사정상 꼭 필요한 자금조달이겠지만,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금조달인 경우 잘 따져봐야 한다. 기업의 기초체력과 상황을 감안할 때 투자위험이 큰 경우도 적지 않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일과 2일에 진행된
카카오게임즈(293490) 공모청약을 앞두고 지난달 말 60조원까지 불어났던 투자자예탁금은 현재 55조원대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30조원을 밑돌았던 올해 초에 비해서는 여전히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풍부해진 돈의 힘으로 증시에 온기가 퍼지자 자금사정이 악화된 기업들이 유상증자나 메자닌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SK렌터카(068400)는 지난주 16일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1152만700주를 주당 8680원에 새로 발행해 대주주인 SK네트웍스가 전량 인수하는 제3재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이번에 발행하는 신주는 전량 1년간 보호예수될 예정이다. 이 주식을 전부 인수할 경우 SK네트웍스 지분율은 현재 64%에서 73%까지 증가하게 된다.
꼭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대주주가 참여하는 유상증자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SK렌터카는 SK네트웍스가 전량 인수하는 유증을 발표한 이후 주가가 급등하는 등 시장의 반응이 괜찮았다. 사진은 현몽주 SK렌터카 대표. <시진/뉴시스>
일반적인 유상증자는 주식가치 희석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기업의 재무상태 보완 또는 기업의 성장을 위한 투자 목적으로 대주주가 참여하는 증자는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늘어나는 주식 수만큼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희석되지만, 그 대신 기업의 재무구조가 좋아지고 기업 성장에 필요한 재원이 마련돼 결국 주가가 오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번 SK렌터카 유증에 대한 기관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신용평가사는 자본금 증가로 재무구조가 좋아지는 점을 이유로 신용등급에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증권은 SK렌터카의 목표가를 1만5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13.3% 낮췄으나 주식 수가 32%나 늘어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목표가를 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차증권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렌털 사업부문과 중고차 매각부문 영업이익률이 악화된 점을 지적했지만, 덩치를 계속 키워가고 있다는 점에 점수를 줬다.
이런 이유로 증자를 발표한 다음날 주가는 상한가로 출발했다. 바로 밀려나긴 했지만 3.2% 올라 유증 발행가격보다 높은 9350원에 마감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도 속속 증자를 발표했다.
티웨이항공(091810)은 대주주인
티웨이홀딩스(004870)가 100% 가져가는 720억원 규모 유증 계획을 발표했고.
진에어(272450)도 1050억원 유증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앞서 제주항공은 1505억원 전액을
AK홀딩스(006840)가 떠안은 유증을 단행했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 필수인 자금을 대주주가 책임지고 하는 조달이어서 나머지 주주들도 지분희석 우려보다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주주 참여가 아닌 일반 주주를 대상으로 한, 특히 기초체력이 약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인 경우는 주주는 물론 투자자들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헬릭스미스(084990)는 지난주 17일 시설자금과 운영자금, 채무상환 등에 쓰겠다며 2817억원 규모, 750만주 주식을 발행하는 유증을 결정했다. 전체 주식이 28% 늘어나는 증자다.
지난해 주력 파이프라인인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VM202’(엔젠시스)의 임상 3상 실패 이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주가는 계속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 것도 마땅치 않을 텐데 이번 증자에 김선영 대표가 참여하지 않기로 한 점도 주주들의 공분을 샀다. 김 대표의 지분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올해 6월말 9.79%였던 지분율은 현재 6.05%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헬릭스미스는 지난해에도 임상 실패 이전에 1496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했던 전력이 있다.
이러니 주가가 온전할 리 없다. 공시 다음날 20% 급락했고, 21일 오전에도 10%가량 하락해 유증 발행가(예정) 3만8150원보다 내려앉았다.
그나마 유증은 주주들에게 도움을 고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유증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경우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채권이지만 주식으로 바꿀 수 있어 회사는 유증과 흡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투자자는 채권이라는 안전장치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로템(064350)은 지난 6월 240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을 위해 CB를 발행,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크게 오르자 CB 보유자들이 대거 주식 전환에 나서 결국 회사도 채권 발행 두 달만에 조기에 상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채권은 거의 대부분 주식으로 전환돼 유증의 효과를 얻게 됐다.
이는 현대로템이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채권을 상환할 정도 체력은 된다는 평가에 따른 흥행이었고, 실제로 채권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으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기초체력이나 주가 상승 기대감이 약한 중소기업들의 CB, BW 발행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체리부로는 상장한 이래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가도 2017년 12월4일 당일부터 공모가를 밑도는 등 변변한 상승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진/뉴시스>
육계 가공업체
체리부로(066360)는 오늘과 내일 이틀간 BW 일반공모 청약을 받는다. 150억원 규모 3년 만기 채권이다. 표면금리는 1.0%, 만기수익률 및 조기상환수익률은 연 4.0%다. 채권 발행 후 매 3개월마다 연 1.0%로 이자를 주다가 조기상환하거나 만기 때는 연 4.0% 기준에 맞춰 남은 이자와 원금을 준다는 의미다.
BW를 채권이자를 보고 투자하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 만기 전에 주가가 오르면 신주 발행을 요구해서 차익을 내려 할 것이다. 그런데 신주 발행가격이 2530원으로 현재 주가보다 높다. 물론 채권 만기 전에만 오르면 되고 또 신주인수권 행사가격도 주가가 하락하면 그에 맞춰 30%를 더 낮출 수 있게 돼 있다.
문제는 과연 이 회사가 주식으로 바꿔 차익을 낼 기회를 줄지, 그보다 채권 원리금을 갚을 수는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다. 체리부로는 육계가격 하락으로 2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며 올해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 3년째 이어지는 등 재무상황이 녹록치 않다.
그래서 이번 BW 발행을 결정했겠지만 이런 상황을 보고도 투자를 할 것인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 주가가 못 올라 차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회사가 채권 만기 때까지 멀쩡해야 채권 원리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라도 첫 번째 조기상환청구일(풋옵션)인 1년 후에는 멀쩡해야 한다.
이번 공모청약이 미달돼도 주관사인 KB증권이 인수하기로 돼 있어 자금 조달에는 상관이 없다. 다만 KB증권이 인수하는 만큼 나머지 투자자들이 9% 비용을 부담하는 조항이 있다.
이만한 위험을 감수할 만한 투자처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형태의 유증과 메자닌 채권 발행이 계속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수익률보다 그 뒤의 기업 사정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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