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이 16년만에 늘어나게 됐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 23일 2022학년도부터 10년동안 의과대학 정원을 4000명 늘리기로 확정한 것이다. 해마다 400명씩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3000명은 지역의사 특별전형을 통해 선발해 10년간 특정 지역에서 의무복무하는 ‘지역의사’로 육성된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동결돼 왔다. 2000년 김대중정부가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의사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정원을 10% 감축하기로 한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 전국적으로 의료인력 공백현상이 빚어지게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는 2.4명에 불과하다. OECD 평균 3.5명을 크게 밑돈다. 이마저도 한의사를 더한 수치이다.
더욱이 의사 확보 상황은 지역별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지역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은 3.1명인데 비해 세종시와 경북 울산 충남 등 일부 지방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시군도 30여곳에 이른다. 따라서 이런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한 것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지방의 의료부족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코로나19가 대구경북 지역에서 크게 번지자 병상은 물론 의료인력까지 심각하게 부족했다. 그래서 전국에서 모집된 자원봉사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가야 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생들도 곧바로 투입됐다. 이들은 현지 의사 및 간호사들과 함께 주어진 책임을 성심껏 수행했다. 덕분에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19 사태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인구가 늘어나고, 의료수요도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해결불가능 상태에 빠지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지금의 고령화 속도로 볼 때 의료인력을 정부계획보다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병원시설이나 장비 등도 필요할 경우 확충해야 한다. 그렇지만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장비나 시설 이전에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첨단 의료기기와 병원이 생긴다 해도 이를 제대로 사용할 의료인력이 없다면 소용없다. 따라서 병원시설과 의료기계 확충에 앞서 잘 교육된 의료인력부터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정부의 계획에 의사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까지 열고 의사 증원 정책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필요할 경우 총파업 등 집단행동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어떤 경우든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자들의 질병과 생명이 어려움에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의료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이 파업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당장 깎거나 의사나 간호사의 급여를 삭감하거나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파업을 벌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여겨진다. 의사의 직업적 가치와 위상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남긴 인류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는 의사가 1만명의 군사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고 노래했다. 성서에도 의사는 ‘신이 내린 직업’이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의사라는 직업적 위상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의사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정부도 이번에 내놓은 방식이 합리적인지 더 성찰하는 것이 좋겠다. 이를테면 공공의료 인력을 굳이 분리해서 선발하는 것이 최선인지 좀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의사들의 노고는 그야말로 컸다. 동시에 한국의 의료수준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효과도 얻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K방역’과 마찬가지로 ‘K의료’의 가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의사들이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의욕을 가져볼 만도 하다. 그러려면 우선 의사의 수효가 넉넉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것은 정부와 의사들의 직업단체가 진지하게 상의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늘어나는 의료수요에 부응하면서 해외진출 방안까지 함께 모색해 보라는 것이다.
의과대학 정원을 중앙정부가 정하는 문제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울산시는 최근 지역 의료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울산대학교의 의대생 증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당연한 움직임이다. 이 기회에 지역별로 의대 정원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아예 넘길 수는 없을까?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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