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리는 왜 범죄인을 미국에 넘겨주는가
2020-06-24 06:00:00 2020-06-24 08:13:19
"어떤 중형이든 다시 받고 싶다. 한국에서 처벌받게 해 달라"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는 그의 미국 송환을 결정지을 심문기일 최후진술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한국에서 처벌받게 하기 위해 '셀프기소'까지 감행했다.
 
그는 약 2년8개월간 다크웹을 운영하면서 4000여명에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공하고 대가로 4억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난 범죄다 보니 한국, 미국, 영국 등 32개국 수사기관이 공조해 적발했다. 미국 연방대배심은 2018년 손씨를 아동 음란물 배포 등 9개 혐의로 기소했다. 한국에서 이미 음란물 배포에 대한 처벌을 받은 것을 감안해 자금세탁 혐의는 자신들이 처벌하겠다며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아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20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 아동 성범죄로 다시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다. 손씨 범행정도를 놓고 보면 "아동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러놓고 이 정도 처벌 받을 각오도 안 했나", "그는 눈물을 흘리지만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범죄인 인도 심문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범죄인이긴 하지만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자국민 신병을 너무 쉽게 내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범죄인 인도 결정을 내리기까지 법원에게 주어진 기한은 단 두 달. 징역 20년형을 받은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서 존 패터슨이나 지난달 구속 기소된 '마약 여왕' 지모씨가 한국에 송환되기까지 4년이 걸린 점을 생각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다.
 
더 아쉬운 것은 성범죄를 대하는 사법부의 안일한 태도다. 인면수심의 죄를 저지르고도 손씨가 확정 받은 형량은 겨우 1년6개월이었다. 여론에 떠밀려 범죄인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긴 했지만, 범죄인 측의 '예전에 자금세탁까지 다 수사해놓고 왜 이중처벌하나', '우리나라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결정이다'라는 반박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처음부터 제대로 처벌했다면. 어쩌면 오늘날 'n번방', '박사방'의 괴물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으로 보내 처벌받게 해야 한다.' 국민들은 청와대 청원까지 올리며 손씨의 미국 송환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 손씨에 대한 비판이기에 앞서 한국에서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의 사법판단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목소리는 아닌지. 사법부는 무겁게 돌아봐야 한다.

왕해나 법조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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