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미국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은행세의 영문은 'Bank Tax'가 아니라 'Bank Levy'다. 'Levy'란 단어에는 부담금, 강제 징수 등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왜 'Tax'가 아니라 'Levy'일까? 그건 은행의 잘못 때문에 생긴 위험부담을 은행 스스로 책임지라는 의미다. 국민이 내는 세금이 아니라 은행들이 따로 분담해 내야 한다는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9월 금융위기 때 미국 씨티은행, AIG그룹 등 유수의 은행들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이 공적자금을 투입, 이들을 살리려 하자 미국 납세자 연맹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미 의회는 구제안을 한 차례 부결해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왜 국민 세금으로 은행 잘못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인가?"라는 항의였다.
대형은행이 망하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 나겠지만 '국민 세금 위에 대마(大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삼고 있는 미국식 민주주의다. 일개 사기업(private)을 위해 공공재(public)를 희생할 수 없다는 엄격함이 묻어있다.
◇ 누가 서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가?
지난 14일 8년만에 시중 12개 은행 은행장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주재로 열린 첫 금융협의회에서다.
은행장들은 이 자리에서 "은행세가 도입되면 그 부담이 중소기업과 서민 등에 집중될 수 있다"며 "볼커룰(Volker rule)도 은행경영에 어려움을 줄 것 "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그런데 문장의 주어가 빠졌다. 은행세가 도입될 경우 '누가' 서민, 중소기업에게 그 부담을 전가한다는 말인가?
여기서 '누구'란 두 말할 필요없이 은행들이다. 이들 스스로 은행세 부담을 서민과 중소기업에게 떠넘기겠다면서 서민과 중소기업을 걱정한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당국에 대한 '협박'이면서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다.
그렇게 서민,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은행들은 '이자놀이'로 손쉽게 돈을 벌었다.
1분기 시중 4대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이 이자로만 챙긴 수익이 4조원이다. KB국민은행은 전체 영업익 중 92%가 예대마진이다.
예대금리는 지난 3월말 2.42%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던 작년 7월 수준(2.61%)으로 돌아갔다. 예금이자는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2%대로 '찔금'주면서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돈 버는 게 은행의 현실이다.
또 최근 TV광고에서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는 한 외국계 은행은 저신용자 신용대출에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농협, 기업은행 등 국책 은행을 제외하면 나머지 은행들도 크게 상황은 다르지 않다.
어려울 때는 공적자금을 요청하더니 위험 분담을 위해 규제를 가하겠다고 하자 서민, 중소기업 핑계를 대는 은행장들. '뻔뻔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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