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20년 정도 거슬러 16회 국회. 지금은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당시 유력 정치인과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사회부를 거쳐 정치부 기자로서 열정에 가득 차 있던 때라 자뭇 궁금한 것이 많았다.
쉽지 않은 자리이기에 용기 내어 던진 질문은 "법은 왜 만들고 고치는가"였다. 정말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었지만 한번쯤 대답을 듣고 싶었다. 당시 국회의 풍경도 사실 작금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기에 찬 젊은 기자의 무식한 질문에 그 정치인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면서 삶의 기초적인 질서를 규정해왔는데 이는 시대가 흐르고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가 덧붙인 말은 "즉 인간이 만든 법이라는게 완전무결할 수 없기에 시대 의식과 상황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질문 자체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끄럽기그지 없지만 그의 대답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최근 '민식이 법'이 화제다. 내용이 화제가 아니라 여야가 정치적 셈법으로만 법에 접근하는 방식이 화제다. 애타는 부모들의 가슴은 정치인들의 '레토닉'에 깊은 절망과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을 듯 싶다.
민식이 법도 처리가 시급하지만 경제법안도 어느 하나 여유있는 것이 없다. 경제법안은 대체로 업종의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나아가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로 초점이 맞춰진 것들이다. 경제가 파탄났다고 정부를 공격하는 야당이라면 더더욱 경제법안 처리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 경제는 조만간 망할 지경이다. 최소한 망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는가.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20대 국회에 대한 기업인식과 향후과제' 조사를 내놨다. 경제분야 입법은 4점(A학점) 만점에 평균 1.66점을 받았는데 학점별로 A학점은 2.3% 뿐이었고, C학점부터 F학점의 비중은 무려 77.7%에 달했다.
또 조사에서 기업들은 경제입법 부진 이유로 40.3%가 이해관계자 의식을 첫 손에 꼽았다. 정쟁으로 경제입법이 후순위로 밀린다는 응답은 32.7%였고, 경제활성화 위한 입법마인드 부족이 20.3%였다. 즉 법안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정쟁에 휘말려 경제 입법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원격진료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 주52시간제 보완 근로기준법,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최저임금법, 클라우드컴퓨팅 규제완화의 클라우드컴퓨팅법, 핀테크산업 등 자본금요건 축소의 보험업법, 일본수출규제 대응의 소재부품특별법과 조세특례제한법 등은 이번에 통과되지 못하면 입법지연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게 대한상의와 재계의 우려다.
대내외 리스크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경제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최소한 법률적 불확실성이라도 해소해야 한다. 마냥 경제가 어렵다 힘들다고만 따지기 전에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은 경제입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대의식과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법은 경제에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국민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조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치권이 민식이 법 뿐 아니라 다른 경제법안들을 연내에 처리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걸까.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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