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일본이 우리보다 우위에 선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1868년 메이지 유신이 기점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년 전이다.
일본어 단어 중에는 '쿠다라나이'라는 단어가 있다. '가치가 없는, 시시하다'라는 뜻으로, '백제(쿠다라)의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라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과거 한반도에서 선진문물을 수입한 역사가 그들의 말속엔 남아있다.
일본의 최근 행보는 과연 아베 행정부만의 문제이며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일본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것에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 2000년 일본(3만8535불)은 한국(1만1947불)의 3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한국은 3만1345달러로 일본(3만9305달러)의 80% 수준까지 따라붙었다.
여기에 한국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미래 먹거리 '5G·수소자동차' 등은 일본도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결국 일본 입장에서 추격자의 기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고, 그게 구체화 된 것이 최근의 '경제보복'으로 풀이된다. 소위 '살을 주고 뼈를 친다'는 지극히 '사무라이'다운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경제는 '일본과의 관계'(껍질) 안에서 성장해왔다. 1965년 '독립 축하금'으로 경제발전 기틀을 닦았고, 1980년대 일본의 기술을 배워 실력을 키웠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의 소재와 부품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도전했다. 물론 일본도 '가마우지 경제'의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한일관계는 새로운 변곡점에 들어섰다. 뿌리 깊은 과거사문제에 생존문제인 미래 먹거리가 얽히면서 단순히 외교적 해법으로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기존의 껍질을 깨고 있다. 당분간 춥고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위기를 이겨낸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