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최영지 기자] “국제검사협회(IAP,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rosecutors) 회원국들이 국가간 신뢰를 구축하는 단계를 거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국제공조를 이뤄낼 시기입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전 세계 검사들의 대표가 된 황철규 부산고검장(사법연수원 19기)은 IAP 회장으로서의 포부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3~5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IAP 회장선거에 출마해 당선돼 오는 9월 취임을 앞두고 있다. IAP는 180개국 검사들로 구성된 유일한 국제기구다. 24일 부산고검 고검장실에서 만난 황 고검장은 “IAP 내에서 아직 집행위원이 없는 아시아 회원국들에 먼저 손을 내밀어 공조가 필요한 상대국을 연결해주는 허브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황철규 부산고검장이 지난 24일 집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중 국제검사협회 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11년 만의 쾌거…국내 유일한 국제기획통 검사
황 고검장의 국제검사협회 회장직에 당선은 김준규 전 검찰총장(11기)이 2008년 IAP 아시아태평양지역 부회장에 당선된 후 11년 만의 쾌거다. 그는 “IAP란 조직의 진정한 국제기구화를 위해선 다양성과 보편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국도 빛내고 싶었다”고 당선 소회를 밝혔다. IAP가 1995년 창설된 이후 국내 검사장과 고검장들은 IAP 집행위원으로 참여해 한국의 활동 무대를 넓혀 왔다. 김 전 총장을 비롯해 한부환 전 법무부 차관(2기), 김진환 전 형사정책연구원장(4기)과 고 임내현 전 국회의원(6기) 등이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황 고검장은 국내 몇 안되는 국제기획통 중에서도 손꼽히는 전문가다. 물론 현직 검사 중에서는 맏형격이다. 특수통이나 공안통과 달리 업무 중에 수사 연계가 필요한 국제 업무를 꾸준히 도맡아 왔다. 그 준비는 평검사 때부터 착실히 해왔다. 1997년 미국 장기연수 중 조지워싱턴 법과대학원(LL.M.)을 졸업한데 이어 2005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경쟁력을 쌓았다.
주UN대표부 법무협력관과 IAP 집행위원, IAP 아시아태평양지역담당 부회장을 역임하며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국내에서도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장을 역임했으며,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미국형사법과 국제형사법, 국제통상법을 강의했다.
특히, 2006년 법무부 검찰 4과가 국제형사과로 개편됐을 때 초대 국제형사과장을 맡았는데 이때 일선 지검 수사부서와 함께 상당한 규모의 외국으로 도주한 범죄자들을 국내로 잡아들였다. 2007년 세관 공매품 저가 매매사업 사기로 60억원을 가로채 페루로 도주한 부부사기단과 차용금 명목으로 18억5000만원을 편취한 사기범, 연구소 투자금 명목으로 80억원을 모아 독일로 도주한 사기범 등이 이때 붙잡혀 법정에 섰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이 해에 국내로 송환한 범죄자 수는 예년의 3배 규모였다. 'BBK 사건' 핵심인물인 김경준씨, 공금을 횡령하고 여신도를 성폭행한 뒤 중국으로 도주한 JMS 정명석 교주 국내 송환도 황 고검장이 국제형사과장 시절 지휘했다.
황 고검장은 “1997년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후 국제업무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관련 보직을 맡으며 기회가 주어지고 운도 따랐다”고 말했다.
황철규 부산고검장이 지난 24일 집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중 국제 사법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한국 검찰 '과학·반부패 수사' 명성 높다"
IAP 회장직은 원래 사법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EU 국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황 고검장과 함께 유럽 대표로 출마한 장 프랑소와 쏘니 프랑스 고검장의 견제가 매우 강력했다고 한다. 황 고검장의 당선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그는 "그동안 외국에서 쌓아 온 한국 검찰에 대한 평가가 우수했다는 점도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면서 “나라가 안 받쳐주면 당선이 힘들 수 있는데 선진국 수준에 이른 한국의 검찰 시스템과 수사 성과가 세계적으로 기여도가 높다”며 “IAP 내에서도 한국이 연례총회를 부지런히 2번이나 유치했고, 과학수사와 반부패수사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간 사법공조 구축에 대한 그의 열의도 이번 당선에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 고검장은 “'연례총회에서 전세계 총장들이 모이는 세계총장회의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고, 이 부분에서 사법공조에 대한 진정성을 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사법공조를 목표로)젊은 검사들을 교육하기 위한 해외사무국을 두기 위해 시범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아직 시범적인 운영이지만 향후 한국에 사무소를 두자는 계획도 물망에 올라있다”고 설명했다.
IAP 회장에 당선돼 국제무대 활동만 최근 강조되고 있지만, 수사 지휘 역량 역시 손에 꼽힌다. 특히 공정거래와 지적재산권 범죄 수사에 일가견이 있는데, 첫 사례를 기록한 수사가 많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시절 네이버와 다음 사이트 내 불법 음원 유통 사건을 맡아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례는 유명하다. 당시 저작권 침해 방조 혐의로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를 압수수색에 이어 기소한 것은 국내 최초다. 건설사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처벌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만 부과하고 고발하지 않은 대기업 담합 사건을 별도로 인지 수사해 처벌한 것도 첫 사례였다.
황철규 부산고검장이 지난 24일 집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중 국제 사법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최영지 기자
그는 현재 국내 검찰 수사에 대해 “특정 사건을 말하기는 힘들지만 선진국을 포함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가 진화하고 있고, 한국 검찰도 이 시대 사회에 가장 적합한 수준으로 진화됐다"며 "이 사회가 멈춰 있지 않기에 이에 맞춰 계속 변화해야 한다”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입장에서,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수사하고 재판할 수 있는 법제도 정비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고검장은 “미국과 중국,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에 공조를 원하는 사례가 증가 추세”라며 “서로 자주 만나는 것보다 사건 해결을 할 때 신뢰가 더 쌓이는 것 같다. 우리나라 검찰이 범죄수익 환수 등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고 특히 중국과는 '꽌시'를 맺고 있다고 볼 정도로 협력 관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기 내 아세안 국가들 IAP 참여 활성화 할 것”
황 고검장은 오는 9월 IAP 회장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IAP에서 각국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단계가 진행됐다면 국경을 뛰어 넘는 국제공조가 이뤄져야 한다”며 “각국에서 관심을 갖는 초국가범죄 외에도 한 나라에서 발생하는 강력 범죄도 돈, 사람이 여러 나라로 도피, 은닉해 수사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수사와 형사재판에서 범죄 혐의를 입증하고 범죄인을 데려오고 보내주고 범죄수익 찾아오고 돌려주는, 여러나라와의 국제공조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어 “2017년 덴마크로 도주한 정유라씨를 국내로 송환하는 과정에서 IAP 집행위원인 덴마크 대검 차장의 도움을 받았고, 유섬나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IAP 위원으로 참여하는 각국 고위급 검사들과 친목 도모 및 신뢰 구축을 통해 국제공조가 이뤄진다. 연례총회에서는 각국 고위급 검사들이 참여해 아세안 국가들과 유럽, 대륙국가들의 공조를 긴밀하게 하는 장이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황철규 부산고검장이 지난 24일 집무실에서 진행 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황 고검장은 “대형사건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 다단계와 같은 서민 대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해외로 무작정 도피하는 추세라 각국이 범죄인 송환이나 사건 해결에 대한 시급성에 공감대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면서 “검찰총장들이 상대국 총장이나 고검장을 만나 검찰단계에선 최대한 협조 구하고 있지만, 검찰간 공조가 다가 아니고 경찰이나 출입국 등 유관기관 공조와 법적 해석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국가간 사법공조의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서민 대상 범죄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조직화·거대화하면서 이에 맞게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 첫 절차로 범죄인 인도·범죄이익 환수 등 국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검 국제협력단을 국제협력부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황 고검장도 “지금까지 국제 분야에 특정된 일이 한정적이었다면 앞으로 업무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 고검장은 “IAP는 법적인 절차 외에 공조를 위한 소통의 장”이라면서 “32개국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에 속하지 않은 아시아 회원국들이 다른 나라와의 연대가 아직 약하다. 이들의 공조를 강화할 수 있도록 IAP가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IAP 사무국 내 부서를 만들어 회원들이 필요한 공조 사항이 있으면 IAP가 상대국과의 연결을 도와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집행위원회에 속해있는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중국, 태국뿐이라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과의 공조는 미미한 편이다. 그는 아시아 회원국들의 활발한 국제무대 진출을 위해 임기 내 한국에서 아시아태평양회의를 개최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최기철·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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