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이성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한국시간)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력 아래 위대한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8일 인민무력성을 방문해 '군의 경제건설 참여'를 강조했다. 북미가 '북한 비핵화를 통한 경제개발'에 상당부분 의견을 접근했고, 세부논의만 남겨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2차 정상회담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2월27일과 28일에 열릴 예정"이라며 "김 위원장과의 만남 및 평화로의 진전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약 10분 뒤 재차 글을 올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지도력 하에 위대한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그는 몇몇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놀라게 하진 못할 것"이라면서 "나는 그를 알게 됐고,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극찬했다. 또 "북한은 다른 종류의 로켓이 될 것이다. 그건 바로 경제적 로켓"이라고 적었다.
같은 날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 등은 김 위원장이 인민군 창건 71주년인 지난 8일 인민무력성을 축하방문해 공연을 관람하고 연회에 참석한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축하연설에서 핵 무력에 관한 언급은 없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수행의 관건적인 해인 올해에 인민군대가 한몫 단단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정주년'(끝자리가 0 또는 5인 해를 뜻하는 북한말)이 아닌 해임에도 인민무력성을 방문해 다양한 축하일정을 소화한 것은 내부에서 비핵화에 가장 부정적인 군부의 동요를 선제적으로 막고, 대신 '경제건설 참여'를 독려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이 인민무력성을 방문한 때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의 2박3일간 평양 실무협상이 마무리하던 시기와 겹친다. 김 위원장의 '군 경제건설 참여' 메시지도 실무협상 결과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비건 대표는 8일 오후 평양에서 복귀해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협상 결과를 보고했다. 바로 다음날인 9일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면담을 하고 방북결과를 논의했다. 비건 대표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있지만 논의는 생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외에도 일본 북핵 수석대표인 가나스기 겐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포함해 오찬을 겸한 한미일 북핵 협상 수석대표 협의를 했다. 서울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서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국회 비핵화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한정 의원, 외교통일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 정병국 의원 등과 만났다.
외교가에서는 비건 대표의 이날 '광폭행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극비리에 진행됐던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과정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비건 대표가 지금까지 도출된 실무협상 결과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나 원내대표의 요청을 수용하는 형식이었지만, 야당 대표 등 국회 관계자들을 만난 것은 북미협상 결과에 대한 '초당적 지지' 요청차원으로 보인다.
한편 북미 실무협상 결과에 대해 양측 모두 함구하는 가운데 '비핵화-상응조치'를 놓고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 합의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북한은 일단 영변 핵시설·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해체 수준의 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이 지속 요구하고 있는 대북제재 완화·해제를 위해서는 북한 전역의 우라늄·플루토늄 시설 폐기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건 대표가 지난달 말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미국의 상응조치를 조건으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파기를 약속했다"고 언급한 것이 그 예다. 최근 들어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북한에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했던 비핵화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영변을 뛰어넘는 핵 폐기' 약속은 북한 당국으로서도 고려할 만한 카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16년 7차 당 대회에서 2020년을 목표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는 기존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드러냈으며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와 비교되는 인민대중제일주의 노선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구호에 걸맞는 명시적인 경제적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약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북제재 완화가 필수라는 점을 고려해 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비건 대표가 실무협상에서 북한에 상세한 핵 신고 리스트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를 받아들였는지 여부가 합의 수준을 결정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핵 리스트 제출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신고-폐기-검증'으로 이어지는 비핵화 조치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진다. 합의가 진전됐을 경우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도 경제제재 완화에 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 설치 등으로 확대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1주년 건군절을 맞아 인민무력성을 방문했다고 9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뉴시스
최한영·이성휘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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