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단말기완전자급제(이하 자급제) 논란이 뜨겁다.
자급제는 휴대폰 구매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을 분리하는 제도로, 휴대폰 공기계를 구매하고 원하는 이통사에서 통신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다. 당초 제조사와 이통사가 각자 경쟁하며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을 인하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의 대리점 및 판매점을 방문해 공시지원금이나 선택약정할인(25%)을 받고 단말기를 구매해 자신의 소비 패턴에 맞는 요금제에 가입하는 현재의 방식과 대조된다.
자급제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올해 2월까지 운영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자급제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뜻이 모아졌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 일부 의원들이 자급제에 대한 질의를 이어가며 다시 부각됐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자급제에 대한 각 이통사·제조사·유통망 등 각 주체들의 이해득실을 따져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자급제를 활성화하거나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 나온 자급제폰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도 자급제를 통한 휴대폰 구매와 이통사 가입도 가능하다. 하지만 자급제용 휴대폰 단말기(자급제폰)의 종류와 수가 적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좁다. 31일 현재 국내에서 휴대폰을 판매 중인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소니 ▲화웨이 ▲샤오미 등 주요 제조사들이 판매 중인 자급제폰은 15종에 불과하다. 샤오미가 기존 홍미노트5에 이어 11월 중으로 포코폰 F1을 출시하면 16종으로 늘어난다. 이중에서도 대부분의 국내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단말기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제품이다. 15종 중 3사가 현재 판매 중인 자급제폰은 10종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갤럭시S9·G7·아이폰8 등 출고가 100만원을 웃도는 프리미엄 단말기다. 소니도 XZ3·XZ2·XZ2콤팩트 등 주로 프리미엄 단말기를 판매한다.
제조사간의 가격 경쟁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중저가 단말기를 주로 판매하는 중국 제조사를 비롯해 보다 다양한 해외 제조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가성비를 갖춘 제품들을 소비자들이 선택하기 시작하면 기존 제조사들도 가격을 내리거나, 가성비를 갖춘 중저가 제품을 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외 제조사들은 한국 휴대폰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전자기기 출시에 앞서 필요한 전파인증 비용과 기간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한 해외 제조사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서 휴대폰 한 모델의 전파인증을 받으려면 7000만~1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과도하다"며 "인증 신청부터 획득까지 4~6주가 걸려 시간도 너무 많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들도 전파인증에 비슷한 비용과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 제조사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무역 장벽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해외 제조사 관계자는 "유럽은 유럽연합(EU)의 표준이나 인증을 한 번 획득하면 EU 가입 국가 어디에서든 추가 인증없이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며 "유럽·미국·중국 등은 투자 대비 높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 규모를 갖췄지만 한국은 시장이 작아 인증 절차가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장이 작고 인증 절차도 번거롭지만 해외 제조사들에게 한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망이 깔려 있고 얼리어답터들이 많아 새 제품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낸다면 다른 나라에 진출하기 위한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해외 제조사들이 한국 시장에 매력을 느낀만큼 그들이 삼성전자·LG전자와 경쟁할 수 있는 판을 만들면 그만큼 경쟁이 일어나고 가격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때 국내 시장에 HTC·모토로라·노키아 등의 단말기가 들어왔지만 까다로운 인증 절차로 인해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전파인증 절차를 간소화하고 너무 비싼 인증 수수료를 내려야 한다"며 "제조사의 판매망과 대형유통망이 단말기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적자급제가 도입되면 유통망도 제조사의 공급처가 돼 유통망을 보호하고 다양한 제조사가 들어와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의원들의 지적과 유영민 장관의 발언을 종합해 자급제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나온 자급제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이라며 "단말기 인증절차 간소화와 비용을 포함한 자급제 관련 구체적 이행방안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저가 단말기의 성능에 대해 정부나 이통사들이 소비자들에게 적극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사양 게임을 하거나 고성능 카메라가 굳이 필요하지 않고 일반적인 모바일 메신저·웹 검색·동영상 감상을 주로 한다면 중저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26일 열린 과기정통부 종합감사에서 "갤럭시노트9이 나왔지만 보통의 소비자들은 갤럭시S 구형 모델이나 중저가 모델을 써도 메신저나 동영상을 감상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정부와 이통사들이 모두가 꼭 최신 프리미엄 단말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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