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법원이 '이태원 살인사건' 당시 아더 존 패터슨의 진술을 믿고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은 검찰 수사에 대해 모순점을 지적하며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고 조중필씨 유족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재판장 오상용)는 26일 조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0억9000만원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국가는 조씨 부모에게 각각 1억5000만원, 조씨 누나 3명에게 각각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처음 에드워드 건 리는 기소하고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검찰 수사 문제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패터슨과 에드워드가 상대방이 조씨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데 수사기관으로써 두 사람 진술을 진술하게 판단하고 화장실 내 혈흔 등 객관적 증거와 부합하는지 고려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당시 에드워드 주장은 특별히 모순이 발견되지 않으나, 패터슨 주장은 모순이 발생하는데 불기소처분을 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세면대의 오른쪽 윗부분과 안쪽 부분에 묻어 있는 피의 양이나 흔적에 비춰 보면, 조씨는 칼에 찔린 후 화장실 왼쪽 구석으로 쓰러지기 전에 세면대 오른쪽 부분을 짚고 있는 상태에서 피를 흘린 것으로 보인다"며 "패터슨 진술과 같이 패터슨이 세면대 오른쪽과 벽 사이에 서서 범행을 목격하다가 패터슨 쪽으로 다가오는 망인을 세면대 오른쪽에 기대어 밀쳐 낸 것이라면 세면대 오른쪽 윗부분과 안쪽 부분에 그와 같이 많은 양의 피가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수사검사는 범행현장의 객관적 상황에 배치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의 패터슨 주장을 합리적인 근거 없이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조씨 부검을 담당했던 이모 서울대 교수의 '가해자는 키가 클 것'이란 진술에 크게 의존했는데 단순히 체격만으로 에드워드를 가해자로 판단한 당시 수사검사 판단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뿐만 아니라 쉽게 수긍하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당시 검찰 행위는 국가배상 책임 발생요건인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국가가 유족에게 위자료 배상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사후적으로 수사기관의 수사 과정에 미흡한 점이 드러나도 곧바로 수사기관이 국가배상책임의 발생요건인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쉽사리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적어도 최초 수사기관의 수사 진행 및 그에 따른 불기소처분에 관한 담당 검사의 판단은 당시 상황과 수집된 자료들에 비춰 볼 때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경험칙이나 논리 원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수사기관 행위는 유족들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했고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1999년 8월 담당 검사 과실로 이틀 동안 출국정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틈을 타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하고 2000년 범죄인 인도청구를 거쳐 무려 16년이 지나서야 다시 송환한 것에 대한 국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청구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지연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수사기관이 미국 법무부에 형사사법공조나 범죄인 인도청구를 하는 외에 다른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탓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에드워드에 대한 무죄판결 확정 이후에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하고 패터슨 신병을 확보하면서 담당검사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위자료 산정 관련해서는 "수사기관의 잘못에 따라서 망인 살인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20년 가까이 이뤄지지 못했고, 애초 수사검사가 패터슨의 진술을 만연히 신뢰한 나머지 위법한 수사 및 불기소처분을 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며 "망인의 유족들이 오랜 기간 헤아릴 수 없는 큰 고통을 받았음을 넉넉히 추인할 수 있다. 더욱이 망인의 유족들은 10년 이상 검찰에 적정한 조사를 요구하고 사건의 진행 상황을 문의했으나, 검찰 측에서는 고소장의 접수를 거절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등 피해자 유족으로서의 적정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그로 인한 고통이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 후 조씨 어머니 이복수씨는 "어떻게든 죽은 중필이 한을 일단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같은 국민을 힘들게 하지 않고 살게 했으면 한다. 너무 좀 엉터리 같다. 우리 같이 힘없는 사람은 너무 힘들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족 측 변호인은 "어머니께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따지면 부족하겠지만, 국가 배상을 인정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범죄 피해자를 어느 정도 보호하고 공소제기 위법성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추후 판결문을 봐야겠지만 의미 있는 판단을 한 거 같다"며 "당시 검찰은 가해자에 대해 신빙성만 다루고 객관적 자료를 미처 검토하지 못했는데 이를 법원이 인정했다. 국가가 이 문제로 항소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씨는 1997년 4월3일 오후 9시30분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칼에 찔려 숨졌다. 패터슨과 에드워드가 살인 혐의 용의자로 지목됐는데 둘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범행을 부인했고 당시 검찰은 에드워드만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1998년 대법원은 에드워드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확정했고 흉기 소지 및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패터슨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조씨 유족이 그해 11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다시 고발하면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담당 검사가 패터슨의 출국금지 조치를 연장하지 않아 패터슨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 후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검찰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한국으로 송환됐다. 이후 지난해 1월 대법원은 패터슨에 대해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지난해 3월 조씨 유족은 국가가 '이태원 살인사건'과 관련해 잘못된 공소제기 및 추가적인 수사, 범죄인 인도청구 등을 적시에 하지 않아 정신적인 손해를 입었음이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냈다.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지난해 1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에서 피해자 고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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