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영하 25도 안팎까지 떨어진 지난 25일 오후 4시30분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철새도래지의 한 콘크리트 건물에 두꺼운 외투와 털모자, 귀마개로 중무장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널따랗게 뻥 뚫린 창가에 바짝 붙어 있었다.
잔뜩 숨을 죽인 채 전방을 주시하던 이들은 한 무리의 피사체가 움직임을 보이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한 30~40m 떨어진 하얀 눈밭에는 수십마리의 기러기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다른 한 쪽에는 두루미 세 마리가 고개를 하늘로 뻗었다.
지난 25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철새도래지의 한 건물에서 사람들이 철새를 찍기 위해 모여 있다. 사진/신지하기자
철원 철새도래지인 철원평야는 임진강 및 한탄강 일대 약 150㎢ 규모의 평지다. 사전에 허가를 받고 출입이 가능한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인 데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여울 등이 어우러져 철새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특히 전 세계 야생 두루미의 약 30%가 겨울을 나는 세계 최대의 두루미 월동지역으로 꼽힌다.
최종수 철원두루미협의체 사무국장은 "이곳 평야는 겨울에도 영양분이 풍부한 습지로 봐도 무관하다"며 "매일 저녁마다 개체수를 확인하고 있는데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경우에는 전년보다 30~40마리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강원도 철원 철새도리지인 철원평야에서 두루미 네 마리가 볏짚 위를 거닐고 있다. 사진/신지하기자
환경부에 따르면 철원평야를 찾는 철새의 수는 두루미를 포함해 매년 증가 추세다. 2015년 철원평야로 날아든 철새 수는 47종 1만864마리였으나 올해는 이보다 2.7배 증가한 49종 3만9898마리를 기록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2004년부터 추진한 지자체와 농민 간 생물다양성관리계약사업과 철원 두루미 서식지 보전 공동 프로젝트 등의 보호 활동이 효과를 봤다"고 분석했다.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은 생태계 우수지역의 보전을 위해 지자체장과 지역주민이 생태계 보전을 위한 계약을 맺고 주민이 그 계약의 내용을 이행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철새 먹이제공과 쉼터 조성 등을 통해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지난 2002년 3개 시·군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지난해에는 전국 25개 시·군으로 확대됐다.
철원평야는 철새와 지역주민 간 상생협력에 힘입어 두루미의 천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환경부는 철원군과 농민 사이의 생물다양성관리계약에 국고 6000만원을 보조해 볏짚을 논에 그대로 놔두는 사업(볏짚 존치)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철원군, 한국생태관광협회,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철원 두루미 서식지 보전 프로젝트를 통해 수확이 끝난 약 30만㎡ 규모의 논에 물을 가둬 두루미에게 우렁이 등 먹이를 제공하고 있다.
철원평야는 철새와 지역주민의 상생으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두루미의 천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철원평야 내에서 탐조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환경부는 이날 철원평야 일대 비무장지대(DMZ) 철새평화타운 및 철새도래지를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했다. 앞으로 주민협의체를 중심으로 재정, 컨설팅, 홍보 등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철새평화타운 해설사인 김일남씨는 "천년을 산다고 해 길조라고 부르는 두루미를 위해 주민 대다수는 농부라는 본업을 마다하고 두루미 애정꾼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보다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고 한국에 계속 머무는 철새가 늘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정종선 환경부 자연보전정책관은 "철원평야에 많은 철새들이 찾는 것은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보호 활동 때문"이라며 "주민들의 철새 보호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이런 활동이 지역 주민의 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생태관광 활성화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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