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사 CEO 리스크가 발생할 때) 금융당국이 인사에 관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이사회나 주주들이 제대로 CEO가 행동했는지, 어떻게 경영진을 교체할 것인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11월27일, 금융위원회 국정감사)
"CEO 스스로 가까운 분들로 (CEO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의 연임을 유리하게 짠다는 논란이 있다. 지금 말한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도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11월29일,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 브리핑)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최근 사흘의 시차를 두고 금융당국의 역할에 대해 한 말이다. 금융사 CEO 리스크가 발생했을 경우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비슷하지만, 최 위원장 스스로가 주주와 이사회 중심의 '민간 자율'을 강조했다가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번복한 것이다.
최 위원장의 이른바 '셀프 연임' 비판이 나온 뒤 일주일 만에 특정회사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가 나오는 등 지배구조 손질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타깃이 된 곳은 최근 윤종규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KB금융지주와 내년 김정태 회장의 3연임 이슈가 놓여있는 하나금융지주다.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사의 지배구조를 손보겠다며 압박에 나서자 금융권 전반이 혼란을 겪는 모습이다. 최대한 규정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꿔보겠지만 당국의 행보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금융권의 목소리다. 당국 수장들의 경고성 발언을 보면 금융사 CEO 추천과 선정 권한을 갖고 있는 사외이사 등 이사회 시스템이 아니라 CEO의 연임과 장기집권을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융감독원은 지난주 내놓은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개선방안'을 통해 금융사 지배구조를 금융소비자 보호와 연관시키기도 했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영업행태가 나오게 된 근본 원인을 금융사 지배구조로 본 것이다. 지배구조와 금융소비자 보호를 연결 짓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게 주된 평가다.
KB금융과 신한지주, 하나금융 등 대다수 금융지주사가 국내 상장사인 만큼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개선은 주주의 의사를 경영에 반영하고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막는 '주주 권리' 차원에서 살펴야 하는데, 금융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감독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은 자칫 정부의 입김이 거세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금융권의 반발이 자신들의 CEO 거취를 걱정하는 볼멘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손질 속도전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금융그룹을 통합감독하기 위한 금융위원회의 '금융그룹감독혁신단'은 설치된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고, 금융감독원의 '금융그룹감독실'은 아직 갖춰지지도 않았다.
국가 경제의 혈맥인 '금융'과 이를 운영하는 CEO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일이 방향성 없이 진행되고, 이를 책임지는 금융당국 수장의 '말 바꾸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명분이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금융사 지배구조 손질은 특정회사나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얘기로 맞춰지고 있다. "이러려고 정권이 바뀌었고, 민간 출신 감독수장이 내려왔나"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친정권 인사로 금융사 CEO를 교체하기 위한 민간회사 압박이라는 '해묵은 오해'를 금융당국이 스스로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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