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해지' 약관 설명 안 해도 보이스 피싱 책임 없어"
대법,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서 원심 파기 환송
2017-09-29 06:00:00 2017-09-29 06: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인터넷 뱅킹 서비스 약관에 '예금 해지'가 추가된 것은 설명 의무 대상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고객이 보이스 피싱 피해를 봤더라도 은행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이모씨가 국민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국민은행이 이씨에게 약 172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 합의부에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변경된 약관 내용이 설명 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이 사건 변경된 약관 규정은 피고 은행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여러 인터넷 뱅킹 서비스의 종류에 예금 해지가 추가된 것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원고에게 어떤 의무가 부과되거나 이를 알지 못했다고 해 원고가 어떤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원고가 그와 같은 사정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고 은행과 사이에 인터넷 뱅킹 서비스 계약을 더 유지하지 않는 등 다른 행동을 취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피고 은행이 제공한 인터넷 뱅킹을 통한 예금 해지 서비스는 이 사건 금융사고에 악용된 것으로 보일 뿐 이 사건 금융사고의 발생이나 확대의 원인이 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이 사건 금융사고의 발생 등은 원고가 자신의 금융거래정보를 성명불상자에게 알려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설명의무의 대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 2001년 6월 기존 저축예금계좌를 기본계좌로 인터넷 뱅킹 서비스에 가입했고, 2006년 12월 장기주택마련저축계좌를, 2008년 1월 주택청약예금계좌를 각각 개설했다. 하지만 2012년 1월 검찰 수사관을 사칭한 보이스 피싱에 속아 보안카드번호 등을 알려줬고, 주택마련저축계좌와 주택청약예금계좌 해지 후 예금이 이체되는 범죄를 당했다. 인터넷 뱅킹 가입 당시 약관에는 인터넷 뱅킹을 통한 예금 해지가 포함되지 않았다가 2004년 3월 추가됐으며, 이에 동의한 이씨는 은행의 설명이 없었다면서 약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은 "피고는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약관의 규정은 고객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설명 의무의 대상"이라며 "이 사건 약관 규정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으로서 원고가 그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별도의 설명 없이도 인터넷 뱅킹 서비스에 가입한 이후에 개정된 약관 규정에 의해 인터넷 뱅킹으로 주택마련저축계좌와 주택청약예금계좌의 중도해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저축예금계좌에서 인터넷 뱅킹에 의해 이체된 예금과 대출금 1532만원은 피고의 과실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라 할 수 없다"며 "또 이 사건 범행은 원고가 성명불상자에게 자신의 금융거래정보를 알려줌으로써 가능했고, 이러한 원고의 잘못은 손해의 발생과 확대의 한 원인이 됐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과실을 50%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와 관련해 주택마련저축계좌와 주택청약예금계좌 해지 후 이체된 2862만원과 602만원을 합한 약 3464만원의 절반에 환급 피해금 약 11만원을 뺀 약 1720만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산정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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