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에 출간된 고 마광수 교수의 시선집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이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라는 시(‘내가 쓸 자서전에는’ 발췌)가 있다. 손톱이 길거나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이거나 방탕한 인생으로 비참하게 사는 걸로 그렸어야 하는데, 그런 여자 ‘사라’를 즐겁고 행복한 여성으로 그린 것이 고인의 일생 일대 실수였다는 취지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아예 잊혀져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조롱 섞인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그저 나는 윤회하지 않고 꺼져 버리기를 바랄뿐’이라는 시(‘내가 죽은 뒤에는’ 발췌)도 있다. 28세에 대학교수가 되어 화려하게 등장한 천재 문학가가 외설시비에 휘말려 음란물 반포 혐의로 투옥되고 내쫓기며 복직되기를 반복하다, 평생을 쫓아다닌 변태라는 꼬리표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비교적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러나 정말로 절절한 심정으로 기술하고 있다.
관능적인 보라색과 수줍은 듯 연한 분홍색이 어우러진 책 표지가 시선을 잡아끄는 ‘마광수 시선 : 솔깃하고 솔직한, 아찔하고 짜릿한’ 이라는 제목의 시선집에서, 그는 ‘자신을 한 평생 불행하게 했던 단 한 명의 여자 사라’에 대한 애정과 증오를 버무려 대중을 향해 절규한 뒤, 2017년 9월5일 오후, 66세의 짧은 생을 자살로 마감하고 말았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라는 책을 낸 뒤에는 품위 실추를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소설 ‘즐거운 사라’(1992)를 출판한 후에는 음란물 제작, 반포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프리섹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프리페팅을 즐기자’는 파격적 주장은 여성을 성의 도구로 인식한다는 비판에 뭇매를 맞았고 전공과목 강의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외상성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다시 복직했지만 한 학기 만에 휴직해야만 했다.
‘즐거운 사라’ 속의 주인공 사라는 화실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대학생을 시작으로 性에 눈을 뜨고, ‘性’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룸살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버지뻘인 중년의 사장 혹은 대학교수 등과 관계를 가진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사라는,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性이란 즐거운 것이고 性을 통한 건전한 쾌락추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90년대 신촌을 무대로 벌어지는 사라의 이러한 성적 탐닉을 불편해하며 변태적이고 외설스럽다고 비난했고, 즐거운 사라는 수많은 논란과 외설 시비 끝에 판금 서적으로 지정되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마교수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특수2부 소속 김진태였다. 1만여 권의 장서를 탐독할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다던 그는 "이건 문학이 아니다"며 출판사 사장까지 구속했고,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제조 혐의 항소심 재판부에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의 수준에 미달하는 음란물’이라는 감정서를 제출한 사람은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다. 그는 특히, “성을 표현한 작품이라도 숭고한 문학작품이 상수도라면 인간의 저급한 본능만 충족시키는 음란물을 하수도에 비유할 수 있는데, '즐거운 사라'는 하수도의 무대에 머물러야 마땅한 작품”이라며 강력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얼마나 합당한 것이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소설 속의 대학교수와 사장님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위선적인 대한민국의 민낯 그 자체를 의미하고, 여성이 성의 주체가 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대중의 이중적 태도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점잖은 척 대의를 논하고 품위를 강변하며 온갖 폼을 다 잡으면서도 밤만 되면 질펀한 향락의 문화 속으로 빠져들기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 사라와 같은 여대생 뿐 아니라 미성년인 청소년들까지도 서슴지 않고 성적 배설의 도구로 삼는 어른들,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허용되는 임계치와 비난의 강도가 다른 기만적인 대한민국. 이러한 모든 것들 때문에 외설이냐 예술이냐를 구분 짓는 잣대가 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를 변태나 색마라 부르며 왕따 시키던 위선적 꼰대들의 비겁한 이중성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는, 우울하다고 했다.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고, 더 외롭고 경제적으로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세상을 떠났으니 덜 우울하고 덜 외로울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고 미안하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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